예술은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혁명,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는 1차 세계대전의 소산이다.

'만종'의 작가 밀레가 유명한 것은 뛰어난 그림솜씨도 솜씨지만 그가 이전의 화가와 달리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농민의 삶을 화폭에 담았기 때문이다.

'소박파'의 시조라는 얘기다.

이 또한 프랑스혁명 이후 물결친 자유화와 무관하지 않다.

새로운 사조는 이처럼 세상의 변화 내지 변혁 속에 탄생된다.

'팝 아트'또한 마찬가지다.

팝 아트는 2차 대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산업화 및 그에 따른 고도소비사회를 배경으로 태동됐다.

용어는 미술평론가 L.앨러웨이가 1954년 처음 사용했고,작품 속에 나타난 것은 56년 영국에서 열린 '이것이 내일이다'전(展)이 시초다.

R.해밀턴이 상업광고 이미지를 콜라주한 '오늘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라는 작품에서 근육질의 남자가 '팝(Pop)'이라고 쓰인 물건을 들고 있는 게 그것이다.

팝아트는 그러나 60년대 들어 미국에서 만개했다.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미국의 팝아티스트들은 기존 회화의 개념과 속성을 완전히 떨쳐냈다.

광고 표지판 사진 만화 등을 미술 속으로 끌어들여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이분법적 구조를 없애고 미술의 '고상함'에 도전했다.

팝아트는 이미지의 대중화 및 형상의 복제를 특징으로 한다.

또 순간적,대량생산적,청년문화적,성적(性的),상업적인 것 등 대중문화의 속성을 압축해 드러냄으로써 미술은 난해하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린다.

팝아트는 20세기 산업사회의 산물이지만 한편으로 유럽의 귀족 미술에서 벗어나 미국 중심의 새로운 미술을 창출하고자 한 미국 사회의 열망이 만들어낸 것일 수 있다.

앤디 워홀의 인쇄물같은 작품이나 '행복한 눈물'처럼 보기에 따라 만평을 연상시키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것이다.

문화의 파급력과 위력 역시 국력에 비례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