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에 가장 먼저 발자국을 남긴 사나이,1996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산악인으로는 처음 기사 작위를 받은 인물,'세계의 대탐험' 등 여러 권의 베스트 셀러를 낸 프리랜서 작가….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신화처럼 일컬어지는 크리스 보닝턴 경(73)이 6일 아웃도어 브랜드 '버그하우스'(이랜드 그룹이 수입)의 명예홍보대사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화려한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임에도 서글서글한 웃음과 쏟아지는 질문에 성의껏 대답하는 자상함이 영락없는 영국 신사를 연상하게 했다.

"탐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열여섯 살 때 스코틀랜드의 구릉지대가 담긴 사진집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정상에 오르고 사진으로는 접할 수 없는 뭔가를 맛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에베레스트에서 남극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극지를 정복해 온 극적인 일생의 첫 단추에 대한 회상이다.

"첫 직업은 군인이었습니다.

5년간 일했죠.하지만 당시만 해도 전문 산악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제대하고 유니레버에 들어가 마요네즈 세일즈맨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역시 9개월 정도밖에 버티지 못했습니다.

직업이 제 탐험 열정을 방해했거든요."

직업까지 버리고 오로지 산에 대한 열정만 간직하고 있던 보닝턴 경은 1960년 원정대를 이끌고 세계 최초로 안나푸르나 2봉(7219m)에 오른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그가 어떻게 막대한 비용이 드는 등반대를 이끌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참 터무니없는 일이긴 한데 후원금을 받기 위해 당시 화제였던 '예티'라는 설인의 발자국을 티베트 멘로치(Menlungtse)산을 오르면서 봤다고 허풍을 좀 떨었습니다.

그랬더니 BBC 등 방송사를 비롯해 몇몇 곳에서 후원이 들어오더군요."

이것을 시작으로 그는 19차례나 히말라야를 등정하고,험준하기로 유명한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최초로 등정한 영국의 세계적인 산악인으로 성장했다.

올드맨오브호이,파타고니아의 페인 중앙봉,창가방,그린란드의 빙하,네팔의 드랑낙리 등 탐험가들이 꼽는 거의 모든 극지를 처음 등정했다.

보닝턴 경은 산악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뛰어난 글 실력으로도 유명하다.

1966년 '나는 산에 오르기로 결심하였다'를 비롯해 올해 '세계의 대탐험'을 국내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보닝턴 경은 전날 엄홍길 대장 등 국내 산악인들과 함께 북한산을 등반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대표 명산인 아름다운 북한산에서 한국의 산악인들과 함께 등반을 하게 돼 기쁘다"며 "서울이라는 대도시 안에 북한산 같은 명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울은 축복받은 도시"라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국내 아마추어 산악인들이 즐겨 한다는 '불수도북'(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에서 한 글자씩 따온 말로 대략 45㎞ 길이의 능선을 잠도 자지 않고 20시간가량에 걸쳐 종주한다)에 대해 물었다.

"저도 예전에 남극 탐험할 때 백야 탓에 30시간가량 한숨도 자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고행은 암벽 등반가라면 누구나 즐길 줄 아는 기쁨이지요."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