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우면 창 밖으로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2층집 발코니에 펄럭이던 흰 빨래들….붉은 성곽 너머 종소리는 귓가를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사흘.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 취해 머무른 게 그렇게 사흘이었다.

민박집 주인 딸의 이름은 마리안느였다.

그녀는 첫 만남에 열쇠와 함께 맥주 한 병을 내밀더니 얼굴이 발개진 채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턱 밑으로 살며시 포개진 살이 인상적이었던 마리안느는 상상 속 미인은 아니었지만 친절하고 따뜻했다.

3인용 방을 호사스럽게 홀로 이용하게 된 포만감은 어느덧 성곽으로 이뤄진 중세도시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크로아티아에 미녀가 그렇게 많다면서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한 청년은 대뜸 크로아티아 예찬을 늘어놓았다.

유럽인들에게 최고의 휴양지로 인기 높은 크로아티아.중동부 유럽을 거치며 고성과 교회에 슬그머니 지루해진 여행객에게 크로아티아는 막연한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

푸른 아드리아해와 그보다 더 짙은 하늘.세르비아계의 피가 흐르는 늘씬하고 육감적인 미인들.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추위와 우울한 도시풍경에 지쳐 있었기에 크로아티아행 열차에 몸을 싣는 데는 그리 큰 갈등이 필요하지 않았다.

16시간을 달려 도착한 크로아티아는 어느 곳을 가든 지중해풍의 따뜻한 향취가 가득했다.

크로아티아의 '제2도시' 스플리트에는 노천 바들이 즐비했고 인근 트로기르 섬은 아늑한 지중해 마을 모습 그대로였다.

역 앞에는 'sobe'(room)라는 팻말을 들고 나온 아줌마,아저씨 서너명이 서성거렸다.

호객 행위는 그리 집요하지 않았고 방을 이미 예약했다고 말하면 새벽 어둠 속으로 슬며시 사라졌다.

미처 방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을 아우른 카페테리아에서 동이 틀 때까지 진한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떡갈나무와 참나무 숲을 뜻하는 '두브라바'라는 말에서 유래된 두브로브니크는 한때 지중해를 도시의 붉은 깃발로 장식할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면서도 튼튼한 성벽을 지닌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버나드 쇼가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돈 있는 사람들이 '10일간의 은둔처'로 여겼던 곳이 바로 두브로브니크였다.

그 견고함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도시를 지키기 위해 유고 내전 당시에 인간방어벽을 만들어 두브로브니크 폭격 반대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향하는 버스는 아드리아 해변의 아슬아슬한 절벽 위를 달렸다.

지중해풍의 낯선 마을들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자맥질을 해댔다.

가는 동안 보스니아 국경을 가로질렀고,한 이탈리아 아줌마는 자리를 옮겨가며 카메라 속에 차창 밖의 해안과 바람을 담아내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두브로브니크에 온 모든 여행객들은 구시가를 둘러보기 위해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성 하나와 그 속에 담겨진 사람들의 일상이 그렇게 고스란히 남은 곳도 드물다.

성 안에는 숱한 유적과 개성 넘치는 상점 외에도 성곽 사람들의 삶이 골목마다 배어 있다.

미로 같은 골목에 들어서면 이발소와 정육점이 나왔으며 바다를 보고 선 학교 옆으로는 조그마한 축구장이 들어서 있다.

성벽 사이로 난 좁은 문을 나서면 바위에 기대 반라의 차림으로 맥주 한 병에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호사스런 일광욕은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 속에서 겨울까지 계속됐다.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모든 삶들이 성벽 안에 공존했다.

성벽 입구인 필레게이트를 지나면 석회암 바닥으로 채워진 중앙로가 나타났고 해질 무렵이면 골목 모퉁이의 레스토랑들에서 잔잔한 음악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골목과 상점들에 기대 성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여행의 백미는 성벽 위를 걸어보는 것이었다.

13~16세기에 지어진 성벽은 보존 상태가 거의 완벽했다.

성벽의 길이가 무려 2㎞,높이가 25m,두께가 넓은 곳은 6m에 달했다.

성벽은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으며 성벽 위에 오르면 한 편으로는 붉은 지붕으로 채색된 구시가지의 속살이 구석구석 들여다보였다.

다른 한 편으로는 아드리아해가 끝없이 펼쳐졌다.

이 도시가 유럽의 여느 곳과 다른 색깔을 지니는 것도 성벽 때문이었다.

성벽 안으로 들어서면 동화나라의 딴 세상으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단지 이 성벽에 오르기 위해 수천㎞를 달려와 두브로브니크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성벽 안의 풍경은 아늑하고 사랑스러웠다.

그 독특함 때문에 구시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으며 유고 내전 때도 폭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도시의 수호 성인 성 블라이세를 기념하는 성당과 스폰자 궁전,렉터 궁전 등도 이방인들을 반겼다.

베네치아로부터 두브로브니크를 지켜낸 신부 블라이세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2월3일이면 이곳 성안에서 축제가 열린다.

축제 때는 수백년 동안 성인의 머리와 목에서 꺼낸 뼈를 간직하는 엽기적인 풍습도 있었고 이 기간에는 죄인들을 석방해 주거나 성안 출입이 금지된 사람들도 들어올 수 있었다.

스폰지 궁전은 성안에 들어오는 상인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했던 곳이다.

6개의 기둥으로 된 1층 화랑의 세공술이 인상적이었다.

스폰지 궁전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적 기록이 간직돼 있는데 천년의 세월이 흐른 문서와 유고 내전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구경할 수 있다.

그 무궁무진한 볼거리들을 바라보며 노천카페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구항구로 나서면 인근 섬들을 둘러보는 유람선들이 잔잔한 바다 위로 밀려 나간다.

유람선을 타고 나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성곽을 바라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해가 지면 연인들은 해변가 노천카페에서 피아노 은율에 취해 와인잔을 기울인다.

이곳 두브로브니크의 청춘들은 구시가지를 벗어나 라파드 지역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구시가보다 저렴한 숙소에 고즈넉한 해변과 산책로를 간직한 라파드 지역에는 운치 있는 레스토랑과 바들이 즐비했다.

중세 성곽 도시의 어디를 거닐어도 들뜬 감각을 쉬게 할 수는 없다.

입맛을 자극하는 해산물 요리의 짙은 향료 냄새가 코밑으로 스며 들었다.

성벽 안 중앙로에서 울리던 따사로운 음악소리는 늘씬한 미녀들의 미소와 뒤섞여 한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글/사진 = 서영진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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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저가항공사 이용하려면 한달 전에 미리 예약하세요

한국에서 크로아티아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오스트리아 빈을 경유해 가는 편이 가장 빠르다.

빈에서는 오스트리아 항공과 크로아티아 항공이 매일 두브로브니크까지 운항한다.

빈 외에도 런던,로마 등 유럽 각지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항공편이 다수 있다.

두브로브니크는 인기 여행지이므로 유럽 저가 항공사를 이용할 경우 한 달 전 사전 예약은 필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차를 타고 스플리트를 경유해 두브로브니크로 들어갈 수도 있다.

열차 뒤칸은 헝가리 국경까지만 운행되니 유의할 것.동유럽 유레일패스를 지녔다면 헝가리 국경에서 스프리트까지는 별도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는 매시간 다니는 버스를 이용한다.

이탈리아 바리에서 배로 들어갈 수도 있다.

가장 운치있는 방법이다.

겨울에는 운행 편수가 적어 사전에 출발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www.jadrolinija.hr)두브로브니크 여행 안내 홈페이지.www.croatia.hr, www.tzdubrovnik.h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