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만 꽂으면 분양이 된다던 수도권 택지지구에서까지 미분양이 잇따르면서 속칭 '4순위 청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4순위 청약은 정식 용어는 아니지만 1~3순위까지의 통장 소지자들을 대상으로 한 1차 청약에서 미달됐을 때 그 이후 통장이 없는 수요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청약 접수를 의미한다.

흔히 '무순위 청약'이라고도 불린다.

장기적으로 개발 전망이 밝은 지역인데 분양가가 높고 전매 규제 등으로 인해 청약 가점이 높은 순위 내 예비 청약자들이 선뜻 청약을 꺼리는 경우 '4순위 청약자'들이 나서게 된다.

또 서울 등 대도시 도심권이나 택지지구 내 상업지역에 개발되는 고가의 주상복합 등도 무순위 예비 청약자들이 눈여겨볼 만한 상품이다.


◆파주신도시 무순위 청약 큰 인기

무순위 청약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사례는 단연 지난달 말 청약을 받았던 파주 신도시다.

수도권 북부의 유망 지역으로 관심이 집중됐지만 정작 1~3순위 청약에서는 대거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 파주신도시 동시 분양에는 5068가구가 청약 물량으로 나왔다.

하지만 전체 물량의 22%인 1069가구가 순위 내에서 청약자를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공급업체들은 순위 내 청약에서 견본주택을 열지 못하도록 한 지침을 건교부와 상의 끝에 변경한 뒤 견본주택을 열고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이른바 무순위 청약에 나섰다.

이달 1일부터 모델하우스를 열자 실수요자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순위 내 청약기간 동안 썰렁했던 분위기는 찾아볼수 없었다.

이번 무순위 청약대상 물건은 삼부토건이 638가구,남양건설 298가구,두산중공업 133가구 등이다.

삼부토건의 경우 청약 시작 4일 만에 공급대상 물건의 3배를 넘어선 무순위 청약자들이 몰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나머지 단지들도 대부분 청약마감일 이전에 모집 가구수를 넘겼다.

무순위 청약자들은 순위 내 청약자들의 당첨자 발표와 계약 기간이 끝난 이후 별도로 동·호수를 추첨해 계약에 들어간다.

4순위 청약은 인터넷 접수를 하지 않고 모델하우스에서 직접 청약받는다.

이 때문에 파주신도시처럼 유망 지역의 경우 4순위 청약 기간에 방문객들이 연일 줄이어 모델하우스를 다녀갔다.

◆재당첨 금지 자유롭고 다주택자도 가능

이처럼 4순위 청약이 눈길을 끌게 된 데는 지난 9월 청약가점제가 실시된 덕이 크다.가점이 높은 무주택자들이 무순위 청약을 하게 되면 '청약 재당첨 금지' 규제를 피하면서 기존 통장의 가입 기간을 보전할 수 있다.

4순위 청약은 통장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수도권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공급되는 아파트에서 순위 내 청약으로 당첨되면 가구원들 모두가 5년간 1순위 청약을 할 수 없다.

청약 가점이 높은 가구원이 있을 경우 은평뉴타운 송파신도시 등 확실한 유망 지역을 놓치게 된다.

하지만 4순위로 청약하면 이러한 걱정이 사라진다.

또 주택을 2가구 이상 보유하고 있어도 청약에 제한이 없어 다주택자라면 주의를 기울여 볼 만하다.

과도한 청약 경쟁을 치르지 않고도 신규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메리트다.

◆신도시·택지지구 위주로 접근해야

4순위 청약을 위해 청약 미달된 모든 아파트를 돌아볼 필요는 없다.

미분양이 너무 많아 당분간 해소 기미가 없는 곳은 나중에 분양 추이를 지켜봐 가면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목표 대상은 신도시나 택지개발지구,역세권,도심 상업지역 등에 들어서는 아파트다.

당장은 인기가 없더라도 주택 경기가 호전되면 수요가 꾸준히 뒷받침되는 곳들이다.

파주신도시의 경우 크기가 분당급에 맞먹을 정도로 크고 선진국형 도시 계획으로 개발되기 때문에 각종 생활편의 시설과 기반 시설이 풍부하게 갖춰져 주거 환경이 매우 양호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앤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청약 가점이 낮은 수요자들이 택지지구에 입성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것이 4순위 청약을 이용하는 것"이라며 "고양시 덕이·식사지구 등에서도 청약 미달이 예상되는 만큼 관심을 둘 만하다"고 조언했다.

파주신도시 2차 동시 분양에서도 청약 미달이 나는지 지켜볼 일이다.

4순위 청약은 법적 청약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할 점도 있다.

사실 그동안 4순위 청약이라는 이름으로 위법을 행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았다.

일부 업체들이 순위 내 청약이 마감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무순위 청약자들을 대상으로 '청약 예치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순위 내 청약이 끝난 뒤에는 계약금을 걸어 두고 청약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며 "하지만 정식 청약기간전 이라면 사전 예약자나 관심고객 명단의 이름을 올려두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식 계약기간 이후 '미계약 물건'도 노려볼 만

4순위 청약이 여의치 않으면 '미계약 아파트'를 알아보는 것도 좋다.

청약 경쟁률이 높았더라도 정식 계약기간 이후에 갑자기 사정이 생긴 당첨자들이나 청약 부적격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청약 부적격자들이 가려지면 통상 10% 안팎의 계약 해지가 이뤄진다.

계약 해지 물건을 노리면 유망 단지에 무혈 입성할 수 있다.

용인시 동천래미안의 경우 6 대 1이 넘는 청약 경쟁률을 보였지만 여전히 미계약 물량이 남아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 반도유보라,용인시 상현동 현대힐스테이트 등도 미계약 물량이 있다.

당연히 단지 규모가 클수록 미계약 물량은 많다.

이들 물량을 노릴 때도 약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너무 조급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계약 물량을 알아보면 해당 업체는 저층밖에 없다는 말을 하게 마련"이라며 "이럴 때는 바로 계약하지 말고 로열층 아니면 안 하겠다고 밝힌 뒤 기다려 보면 분양업체로부터 전화가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배짱을 부려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인기가 없는 저층부를 먼저 팔려는 분양업체의 생리를 이용해 볼 만하다는 설명이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소장은 "분양 시장이 어려워졌지만 '밀어내기 분양'으로 공급 물량이 급증하면서 4순위 청약이나 미계약 물량을 살펴볼 기회가 크게 늘어났다"며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 등은 3~4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충고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