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희(韓文熙) < 에너지기술연구원장 >

인터넷 여행 사이트를 둘러보면 지역마다 곳곳에 수많은 펜션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소개돼 있다.

일에 지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한 번쯤 묵어보거나 또는 직접 소유하길 바랄 법도 하다.

원래 펜션이란 연금(年金)·은급(恩給)을 뜻하는 용어인데,유럽에서 노인들이 여생을 연금과 민박 경영으로 보내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부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이나 직장을 퇴직한 사람들이 전원생활과 더불어 수입원의 하나로 펜션을 건설해 운영하는 사례가 많이 생겼다.

평범한 이들에게 있어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편안하고 아름다운 주거환경을 갖추려는 욕구는 누구에게든 예외가 아니며 사치스러운 바람이라고 치부할 일도 아닐 것이다.

고령화사회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노후에 대한 걱정은 커다란 불안 요인 중 하나다.

특히 이공계 출연기관 종사자들은 대기업이나 대학 등에 비해 복지 여건도 열악하거니와 60세 전후로 맞게 되는 퇴직 이후의 생활에 대한 대비책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재직 중 연 단위로 지급되는 퇴직금과 국민연금 외에는 일체의 노후(老後)를 위한 제도적 보장이 없다 보니,노후를 위한 설계라고는 자신의 형편대로 적금이나 보험 따위에 가입하는 것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기초기술연구회,산업기술연구회,공공기술연구회 등 과학기술분야 3개 연구회 산하 연구기관에서 지난 3년간 정규직만 659명이 이직(移職)한 것으로 조사됐다.

젊은이들의 이공계 기피 못지않게 현직 종사자들의 이직 현상도 심각한 실정인 것이다.

이러한 이직의 배경으로는 자기 발전을 위한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경제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공계의 위기를 진단하는 여러 목소리들이 있지만 현직 종사자들이 노후에 대해 느끼는 막막함도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정부가 과학기술계의 숙원사업으로 인식돼온 연구원 노후복지문제 해결을 위한 '이공계 인력관리 특별지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특별자금 2000억원을 조성해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동안 과학기술부가 과학기술 중심 사회 구축을 목표로 과학기술 혁신시스템 개편이나 연구개발투자 증대 등 많은 성과를 이루어 왔는데 이번 계획은 과학기술인의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사기 진작(振作)과 관련된 것이라 더욱 연구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제도가 본궤도에 오르면 이공계 우수 인재의 유출을 방지하는 한편,젊은이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 해소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짚어야 할 몇 가지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정부는 이번 연금 제도를 만드는 데 그치지 말고 이를 공무원 연금이나 사학연금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 과학기술인들이 사기를 갖고 노후에 대한 걱정없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구원들이 전적으로 연금에만 노후를 의존하려 해서도 안될 것이며 개개인 차원에서 노후 대책에 대한 고민과 투자가 있어야 함도 물론이다.

무엇보다 강조돼야 할 것은 과학기술인의 적극적인 참여일 것이다.

연구원 연금은 사학 연금이나 공무원 연금보다 당장 수익률이 떨어지기에 연구원들의 추가적인 부담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추가 부담 없이 정부에 무조건 의지하는 것은 향후 연금제도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는 기회와 여지마저 감소시키는 것이기에 대승적(大乘的) 차원에서 연구원들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가입 연령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혜택으로 인한 무관심이 장해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아름다운 '펜션'에서의 전원 생활이 이루기 쉽지만은 아닌 꿈일지라도,'펜션(年金)'이 노후 보장의 큰 받침돌이 될 것임은 자명(自明)한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과학기술인들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