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장갑을 벗어봐야 결과를 알수 있다고 했던가.

17번째홀(프로의 경우 53번째나 71번째홀)까지 잘 나가다가 마지막 홀에서 무너져 눈물을 쏟는 골퍼들이 한둘이 아니다.

10일(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레퍼드크릭GC(파72)에서 끝난 유럽PGA투어 '알프레드 던힐 챔피언십'.세계랭킹 5위 어니 엘스(남아공)는 4라운드 17번홀까지 2타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더구나 마지막 18번홀은 길이 541야드로 짧은 파5홀인데다 티샷이 잘 맞아나가서 그의 우승 가능성은 100%에 가까웠다.

이 홀은 그린주변 사방이 워터해저드인 아일랜드 형태.'2온'을 노린 엘스의 두 번째샷이 푸시가 되며 물에 빠졌다.

그래도 '보기'는 가능한 상황이므로 엘스의 우승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변은 평범한 상황에서 잉태되기 시작했다.

1벌타 후 친 네 번째 피치샷이 좀 강하다 싶더니 그린을 넘어 연못으로 사라졌다.

갤러리들은 웅성거렸고,엘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시 1벌타를 받고 여섯 번 만에 볼을 그린에 올린 엘스의 '더블 보기' 퍼트거리는 1.8m.성공하면 연장돌입이요,실패하면 2위로 추락하는 순간이라 갤러리들은 숨소리까지 낮추며 지켜보았다.

그러나 엘스의 퍼트는 홀을 지나가버렸고 존 비커턴(잉글랜드·합계 13언더파 275타)에게 우승컵이 돌아가고 말았다.

공동 2위에 그친 엘스는 보도진을 따돌린 채 대회장을 빠져나갔고,외신들은 '믿을 수 없는 끝내기'(unbelievable ending)라고 기사 제목을 달았다.

올해만 해도 엘스처럼 최종일 최종홀에서 '다 잡았던 우승'을 놓친 경우는 여럿 있다.

특히 2008시즌을 시작한 유럽투어에서는 5개 대회 중 4개의 주인공이 72번째홀에서 뒤바뀌었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브리티시오픈에 출전한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가 꼽힌다.

그는 3라운드까지 3타차 선두로 생애 첫 메이저우승에 다가서는 듯했다.

최종일 17번홀까지도 1타차 선두였다.

그런데 72번째홀인 18번홀(파4)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얘깃거리를 만들었다.

아이언 티샷으로 소심한 플레이를 한 끝에 세 번 만에 볼을 그린에 올렸으나 우승을 결정할 수도 있었던 2m 파퍼트는 홀을 스쳐지나고 말았다.

가르시아는 떨군 고개를 한동안 들지 못했고,우승컵은 연장전 끝에 파드리그 해링턴 몫이 돼버렸다.

2003년 미국PGA투어 퀄리파잉토너먼트 최종일 최종홀에서 30cm거리의 퍼트를 놓쳐 1타차로 미국무대 진출에 실패한 강욱순(41·삼성전자).그 불운의 굴레를 벗을 수 있는 기회를 지난 9월 레이크힐스오픈에서 맞았다.

최종일 17번홀까지 2위권에 2타 앞서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홀에서 '파'만 해도 우승컵을 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18번홀 역시 파5여서 역전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강욱순은 그러나 1.5m 파퍼트를 놓쳐 버디를 잡은 추격자들과 공동선두가 됐고,연장전 끝에 4년여 만에 잡은 우승기회를 날려보냈다.

부 위클리(미국)는 3월 미국PGA투어 혼다클래식 최종일 18번홀(파5)에서 90cm 파퍼트를 실패하는 바람에 연장전을 허용했고,2위에 그친 적이 있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