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IB' 新성장 엔진으로 뜬다] (1) '안방' 넘어 세계로… 증권맨 이젠 종합상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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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2개월간 파견나온 대우증권 이성진 해외사업추진실 차장.그가 맡은 일은 인도네시아 현지 금융사업을 적극 발굴해 한국 본사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일종의 포스트 역할인 셈이다.
그에게 최근 특명 하나가 떨어졌다.
현지 대규모 석탄회사가 광구 개발을 위해 해외 자본 파트너를 찾고 있는데 이를 따내라는 것이다.
이 차장은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석탄광구가 위치한 오지까지 10시간이 넘는 자갈길을 소형차를 타고 수차례 오갔다.
현지에 도착하면 잠을 잘 만한 곳도 없어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기 일쑤다.
그는 본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팀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치밀한 전략을 짜고 있지만 사업 규모가 크고 쟁쟁한 외국계 투자은행들도 달라붙어 그리 호락호락한 상황이 아니다.
이 차장은 "인도네시아라고 하면 사람들은 '발리'를 떠올리지만 현실은 정말 열악하다"며 "현지에 나와 사업 발굴을 위해 뛰어다니다 보면 과거 종합상사맨들이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지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이 금융 수출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20세기 대한민국 제조업의 해외 시장 개척을 종합상사맨들이 담당했다면 21세기에는 금융업의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증권맨들이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 실패는 반복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7년 말.외환위기가 닥치기 직전이던 당시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지점 수는 무려 58개에 달했다.
지금의 32개보다도 많았다.
1992년 증시 개방 이후 증권사들이 외국인 투자자 유치를 위해 해외 지점 개설에 경쟁적으로 나선 결과였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지자마자 해외 지점들은 우수수 문을 닫았다.
일부는 해외 채권에 무리하게 투자한 후 회수하지도 못한 채 철수해야 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나간 자명한 결과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증권사들은 치밀한 준비와 새로운 전략으로 무장한 채 해외 시장 개척에 재도전하고 있다.
우선 진출 방식이 달라졌다.
과거엔 단순한 외국인 주식 약정 따내기에 그쳤다면 지금은 직접 현지 자본시장에 침투해 돈을 버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해외 증권사와 제휴해 현지에서 IB(투자은행) 사업을 벌인다거나,현지 자산운용사를 세운 후 돈을 끌어모아 투자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유신 굿모닝신한증권 부사장은 "리스크를 감수할 각오가 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진출 타깃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외국인 자금 유치에 수월한 선진국 진출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동남아 등 이머징 마켓이 주 타깃이다.
유상호 사장은 "이머징 마켓은 우리나라가 걸어온 과거와 비슷한 데다 아직 글로벌 메이커들이 관심을 덜 보이고 있는 만큼 우리가 먼저 진출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계 증권사 IB 담당자는 "비교적 후발 투자은행들인 ING나 스탠더드뱅크가 어려운 미국계 IB들과의 경쟁을 피해 ING의 경우 브라질과 아시아 동유럽 등에 특화하고,스탠더드는 아프리카에 승부해 성공한 것이 국내 증권사들에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돈이 되는 것이면 다 투자하라
진출하는 분야도 제한이 없어졌다.
현지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서부터 자원개발,기업 인수·합병(M&A) 주선,비상장 국영기업 지분 인수,기업공개(IPO),부실채권 인수,현지 채권 발행,SOC(사회간접자본) 민영화 등에 이르기까지 돈이 되는 것이면 못하는 사업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세계 곳곳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가 나오면서 물이나 광물 선박 등 실물 투자도 진행 중이다.
대우증권은 올 들어 해외 IB 분야에 5000만달러가량을 집행했다.
최근 중국 최대 은행인 공상은행과 PI(자기자본투자) 자문 계약을 맺고 중국 시장에서 비상장 주식 투자,M&A에 대한 재무적 투자 등에 적극 나서기로 한 상태다.
삼성증권은 세계적 기업인 FILA의 M&A를 단독으로 성사시켜 주목을 받았다.
FILA의 지사에 불과했던 FILA코리아가 전 세계에 분산돼 있던 FILA의 글로벌 비즈니스를 통째로 인수하는 작업을 외국계 IB를 제치고 단독으로 맡아 성공시킨 것이다.
현대증권은 해외 부실채권 인수 사업에 적극 나서,이미 중국 장시성에서 2억달러 규모의 NPL(부실채권) 인수를 성사시킨 데 이어 최근에는 쓰촨성에서 3억달러짜리 딜을 추진 중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자본 수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주식과 부동산,유전 개발 등에 투자하는 펀드를 국내에서 만들어 현지에 진출했으며,조만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전역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현지에 뿌리를 내려라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과감한 현지화 전략이다.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현지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과거처럼 지점이나 사무소만 내는 식으로는 결코 큰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우리투자증권은 싱가포르에 5000만달러를 투자,해외 IB센터를 세우고 동남아 시장에서 PEF(사모투자펀드)나 M&A,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헤지펀드 등 선진국형 IB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일 계획이다.
미래에셋은 홍콩과 싱가포르 인도 런던에 설립한 자산운용사를 바탕으로 현지에서 대규모 자금을 끌어 모아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는 글로벌 운용사로 변모할 계획이다.
김형태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증권사뿐 아니라 은행들도 너도 나도 해외 진출에 나서지만 사실 해외 자본시장에서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비즈니스는 증권사의 IB나 자산운용밖에 없다"며 "증권사가 투자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대형화나 수익원 다변화를 위해서라도 해외 시장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일종의 포스트 역할인 셈이다.
그에게 최근 특명 하나가 떨어졌다.
현지 대규모 석탄회사가 광구 개발을 위해 해외 자본 파트너를 찾고 있는데 이를 따내라는 것이다.
이 차장은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석탄광구가 위치한 오지까지 10시간이 넘는 자갈길을 소형차를 타고 수차례 오갔다.
현지에 도착하면 잠을 잘 만한 곳도 없어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기 일쑤다.
그는 본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팀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치밀한 전략을 짜고 있지만 사업 규모가 크고 쟁쟁한 외국계 투자은행들도 달라붙어 그리 호락호락한 상황이 아니다.
이 차장은 "인도네시아라고 하면 사람들은 '발리'를 떠올리지만 현실은 정말 열악하다"며 "현지에 나와 사업 발굴을 위해 뛰어다니다 보면 과거 종합상사맨들이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지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이 금융 수출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20세기 대한민국 제조업의 해외 시장 개척을 종합상사맨들이 담당했다면 21세기에는 금융업의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증권맨들이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 실패는 반복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7년 말.외환위기가 닥치기 직전이던 당시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지점 수는 무려 58개에 달했다.
지금의 32개보다도 많았다.
1992년 증시 개방 이후 증권사들이 외국인 투자자 유치를 위해 해외 지점 개설에 경쟁적으로 나선 결과였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지자마자 해외 지점들은 우수수 문을 닫았다.
일부는 해외 채권에 무리하게 투자한 후 회수하지도 못한 채 철수해야 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나간 자명한 결과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증권사들은 치밀한 준비와 새로운 전략으로 무장한 채 해외 시장 개척에 재도전하고 있다.
우선 진출 방식이 달라졌다.
과거엔 단순한 외국인 주식 약정 따내기에 그쳤다면 지금은 직접 현지 자본시장에 침투해 돈을 버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해외 증권사와 제휴해 현지에서 IB(투자은행) 사업을 벌인다거나,현지 자산운용사를 세운 후 돈을 끌어모아 투자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유신 굿모닝신한증권 부사장은 "리스크를 감수할 각오가 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진출 타깃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외국인 자금 유치에 수월한 선진국 진출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동남아 등 이머징 마켓이 주 타깃이다.
유상호 사장은 "이머징 마켓은 우리나라가 걸어온 과거와 비슷한 데다 아직 글로벌 메이커들이 관심을 덜 보이고 있는 만큼 우리가 먼저 진출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계 증권사 IB 담당자는 "비교적 후발 투자은행들인 ING나 스탠더드뱅크가 어려운 미국계 IB들과의 경쟁을 피해 ING의 경우 브라질과 아시아 동유럽 등에 특화하고,스탠더드는 아프리카에 승부해 성공한 것이 국내 증권사들에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돈이 되는 것이면 다 투자하라
진출하는 분야도 제한이 없어졌다.
현지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서부터 자원개발,기업 인수·합병(M&A) 주선,비상장 국영기업 지분 인수,기업공개(IPO),부실채권 인수,현지 채권 발행,SOC(사회간접자본) 민영화 등에 이르기까지 돈이 되는 것이면 못하는 사업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세계 곳곳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가 나오면서 물이나 광물 선박 등 실물 투자도 진행 중이다.
대우증권은 올 들어 해외 IB 분야에 5000만달러가량을 집행했다.
최근 중국 최대 은행인 공상은행과 PI(자기자본투자) 자문 계약을 맺고 중국 시장에서 비상장 주식 투자,M&A에 대한 재무적 투자 등에 적극 나서기로 한 상태다.
삼성증권은 세계적 기업인 FILA의 M&A를 단독으로 성사시켜 주목을 받았다.
FILA의 지사에 불과했던 FILA코리아가 전 세계에 분산돼 있던 FILA의 글로벌 비즈니스를 통째로 인수하는 작업을 외국계 IB를 제치고 단독으로 맡아 성공시킨 것이다.
현대증권은 해외 부실채권 인수 사업에 적극 나서,이미 중국 장시성에서 2억달러 규모의 NPL(부실채권) 인수를 성사시킨 데 이어 최근에는 쓰촨성에서 3억달러짜리 딜을 추진 중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자본 수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주식과 부동산,유전 개발 등에 투자하는 펀드를 국내에서 만들어 현지에 진출했으며,조만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전역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현지에 뿌리를 내려라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과감한 현지화 전략이다.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현지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과거처럼 지점이나 사무소만 내는 식으로는 결코 큰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우리투자증권은 싱가포르에 5000만달러를 투자,해외 IB센터를 세우고 동남아 시장에서 PEF(사모투자펀드)나 M&A,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헤지펀드 등 선진국형 IB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일 계획이다.
미래에셋은 홍콩과 싱가포르 인도 런던에 설립한 자산운용사를 바탕으로 현지에서 대규모 자금을 끌어 모아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는 글로벌 운용사로 변모할 계획이다.
김형태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증권사뿐 아니라 은행들도 너도 나도 해외 진출에 나서지만 사실 해외 자본시장에서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비즈니스는 증권사의 IB나 자산운용밖에 없다"며 "증권사가 투자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대형화나 수익원 다변화를 위해서라도 해외 시장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