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역사상 올해만큼 '어렵고도 힘겨운 해'는 없을 것같다.

연초 삼성전자 삼성SDI 등 주력 계열사들의 잇단 실적악화로 '위기설'이 불거진데 이어 연말에는 비자금 의혹 등으로 내년 경영계획 수립도 못할 지경에 처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그룹을 둘러싼 '외풍'이 점점 거세지면서 내년 경영공백까지 우려할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위기 속에서도 삼성그룹 각 계열사들은 내년에 새로운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계열사마다 어려운 대내외 경영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비상경영 체제를 수립하고 '신성장동력' 발굴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내년에도 비상경영 체제로

삼성은 올해 비상경영 시스템을 연중 가동해왔다.

연초 이건희 회장의 '샌드위치론'에 이은 '5∼6년후 위기론' 지적과 함께 원·달러 환율하락,고유가 등의 악재를 감안해 계열사마다 원가절감 노력과 사업·인력 구조조정을 착실하게 진행한 것.실제 삼성전자와 삼성SDI 등 전자 계열사들이 인력감축을 한 데 이어 삼성생명 등 다른 계열사들도 사업·인력 구조조정을 꾸준히 펼쳤다.

특히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총괄,정보통신총괄 등 실적악화를 겪는 사업부문에 대해 대대적인 '메스'를 대면서 수익성 개선에 힘써왔다.

이 결과 삼성은 그룹 전체로는 예년과 비슷한 경영성과를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세계 IT(정보기술)업계에서 독일 지멘스에 이어 두 번째로 연간 매출 1000억달러 달성을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유가와 환율 변수에 이어 특검이라는 '정치적 외풍'까지 견뎌내야 하는 내년도 경영상황은 올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려울 것이란 점에서 삼성은 내년 경영계획을 극히 보수적으로 잡고 있다.

우선 그룹 차원에서 사업기준환율(원·달러 기준)을 925원,유가(두바이유 기준)를 67달러로 잡았다.

올해 경영계획 가이드라인인 환율 932원,유가 64달러보다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다.

투자계획도 축소할 방침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내년 투자규모를 지난해(10조100억원)와 올해(9조1700억원)보다 줄일 계획이다.

◆새로운 캐시카우 키운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도 삼성은 그룹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는 적극적이다.

반도체 휴대폰 LCD 등을 능가할 캐시카우(수익창출원) 발굴에 주력하고 있는 것.현재 삼성전자가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분야는 △고용량 메모리 △차세대 디스플레이 △차세대 이동통신 △디지털TV △차세대 프린터 △시스템 LSI △차세대 매스스토리지(Mass Storage) △에어 컨트롤시스템 등 8가지.여기에 홈네트워크,디지털 의료기(U-헬스),가정용 로봇(홈케어로봇) 등도 차세대 신수종사업으로 선정해 놓은 상태다.

이 중에서도 삼성이 꼽는 대표적인 미래 캐시카우는 '프린터'와 '시스템LSI(비메모리)'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최근 "신성장사업인 프린터와 시스템LSI 부문의 매출을 2009년까지 100억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밝혔다.

먼저 프린터는 세계시장 규모가 올해 130조원으로 예상되는 사업으로 메모리반도체(40조원),디지털TV(100조원) 시장규모를 웃도는 '빅 마켓'이다.



현재 미국의 HP(휴렛팩커드)가 독주하고 있는 이 시장에 삼성은 2000년 이후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어느 새 흑백레이저 프린터·복합기,컬러레이저프린터·복합기 등 4개 부문에서 세계 2위에 올랐다.

이 같은 고속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전자 화학 통신 등의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LSI'도 삼성이 꼽는 알짜배기 신수종사업이다.

삼성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지만,세계 반도체 시장의 65%를 차지하는 시스템LSI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걸음마 수준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꾸준한 투자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도 일부 거두고 있다.

지난 3분기에 삼성은 디스플레이구동칩(DDI),내비게이션용AP,휴대폰용 스마트카드,MP3용 시스템온칩(SoC) 등 4개 분야에서 1위에 올랐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