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29년간 몸담아온 현대중공업에서 정년퇴직하는 기계가공1부 권동길 기장(58)은 요즘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평생 직장이던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협력회사 2곳에서 퇴직 후에 같이 일하자는 러브콜을 받았기 때문이다.
권 기장은 그 중 한 곳에서 일을 계속할 예정이지만 돈 때문만은 아니다.
회사로부터 받은 자사주와 그동안 급여를 쪼개 사모은 현대중공업 주식이 크게 오른 데다 노후대책용으로 마련해 놓은 상가 2곳에서 월세가 꼬박꼬박 나오는 등 만만치 않은 경제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 기장은 "일을 계속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규칙적인 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량한 모래밭에서 시작해 세계 최고의 조선(造船)강국을 일군 현대중공업의 1세대 산업전사 634명이 이달 말 행복한 정년퇴임을 맞는다.
20대 초반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30여년간 현장을 지키며 세계 최강 조선한국의 신화를 창조한 이들은 퇴직을 앞두고 평균 3~4곳에서 입사 제의를 받으며 축복받은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이미 퇴직자 가운데 250여명은 1년 계약으로 현대중공업에 재고용돼 연장 근무를 하며,재고용이 안 된 퇴직자들도 다른 조선소나 협력업체로부터 끊임없는 구애를 받고 있다.
30여년간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기술을 갈고 닦는 등 현장 노하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조선업계의 베테랑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본 조선소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며 익힌 기술을 밑천으로 허허벌판이던 울산 미포만을 세계 조선산업의 메카로 탈바꿈시킨 주역들이다.
현대중공업에서 34년간 재직한 선실생산2부 강기열 기정대우(58)는 "현대중공업과 중소 조선소 2곳,협력업체 1곳 등 모두 4곳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다"며 "조선업 호황으로 업계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어 정년퇴직자 스카우트 전쟁이 치열하다"고 소개했다.
특히 용접기술자들의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번 정년퇴직자들은 평균 1억1000만원의 퇴직금을 지급받으며,재고용의 경우 퇴직 직전 평균 급여의 70~80%를 받는다.
이들 대부분은 자사주가 대박이 난 데다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아 재테크 기회를 많이 갖다 보니 노후에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됐다.
1992년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대선 출마 당시 주당 1만1000원에 직원들에게 나눠준 자사주는 지금 40배 가까이 올랐다.
직장 동료들의 주식까지 매입해 지금까지 보유한 퇴직자들은 대박을 맞았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해온 이들 1세대 산업전사는 현대중공업과 함께 성장하며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대부분 중졸이나 고졸 생산직인 이들이 최근에는 연봉 8000만~9000만원의 고소득자 대열에 합류하며 대도시 화이트칼라(사무직 근로자)보다 나은 삶의 질을 누리는 '네오 블루칼라(Neo Blue-collar)' 계층으로 부상한 것.
이들은 하루하루 생활에 쫓기는 화이트칼라들과는 달리 주식과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전원주택을 마련하는 등 여유있게 은퇴 이후를 준비하며 '부유한 시니어(Wealthy senior)'의 삶을 꿈꾸고 있다.
강 기정대우는 "조선소 설립 초기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막걸리 파티를 하면서 '몇 십년 후면 모두 자가용을 몰고 일터로 출근할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며 "당시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4만~5만원의 월급을 받던 근로자 입장에서 '꿈 같은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현실이 돼 버렸다"고 회상했다.
권 기장은 "서울 영등포의 작은 공장에서 일하다 신문에서 모집공고를 보고 무작정 울산으로 내려 왔다"며 "당시 동료들이 왜 시골로 내려가냐고 말렸지만 지금 연봉을 말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누리는 남부럽지 않은 삶의 질을 곁에서 지켜본 정년퇴직자의 자녀들도 대를 이어 현대중공업에 취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32년간 수중 절단·용접 작업을 해온 1야드기술관리부 한춘근 기장(58)은 "아들은 현대중공업 중전기사업부,딸은 해양사업부에 근무하고 있다"며 "가족이 모두 최고의 직장에서 일하고 있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소개했다.
198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24년간 선박 클리닝 작업을 한 의장2부 권순남 기사(여·58)는 "남편과 사별한 뒤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3남1녀를 모두 교육시켰고 생활도 어려움없이 꾸려왔다"며 "자녀들이 현대중공업에 입사하길 바랬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4년제 대학에 충분히 진학할 수 있는 근로자 자녀들도 생산직 입사를 위해 전문대나 공고에 진학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물론 부모들의 권유도 한 몫하고 있다.
현재 현대중공업에서 부자가 함께 근무하는 경우만 무려 199쌍으로 이 중 생산기술직이 90%를 넘는다.
정년퇴직자들은 고향은 제각각이지만 30여년간 삶의 터전을 일궈온 울산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인근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중공업이 자리잡은 울산 동구는 백화점,대학병원,체육관,공연장 등 복지 인프라가 완비돼 있어 '동구 공화국'이라는 별칭까지 붙어 있다.
정재헌 문화부장은 "퇴임해도 울산에 남겠다는 직원들이 대부분"이라며 "울산 인근에 전원주택 지을 땅을 보러다니는 사람들도 많다"고 전했다.
퇴직 후에 계속 일을 하는 대신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의미있는 여생을 준비하는 은퇴자들도 있다.
한국잠수협회 울산 지부장을 맡고 있는 한춘근 기장은 "잠수만 30여년간 해온 이 분야 전문가"라며 "앞으로 태화강 정화 활동 등 봉사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30여년간 구조조정도 없이 순조로운 직장생활을 이어온 현대중공업 정년퇴직자들에게도 힘든 시간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 극렬했던 노사 분쟁 시기다.
당시 반장을 맡고 있었던 권동길 기장은 "새벽까지 노조원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5~6년간 지속해야 했다"며 "이제는 13년 무분규에다 노조위원장까지 해외 수주에 발벗고 나서니 회사를 떠나면서도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가 묵묵히 참아줘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며 "은퇴하고 나면 아내와 여행도 다니면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 정년퇴직자 634명은 울산 현대호텔에서 오는 20일까지 9개팀으로 나눠 부부 동반으로 정년 퇴임식을 갖는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