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상조하는 우리의 미풍양속에 품앗이가 있다.

서로가 부족한 일손을 도우는 것인데 모내기와 추수,길쌈은 물론이고 관혼상제 등 사사로운 일에도 몸을 아끼지 않고 도왔다.

품에 대해서는 보답이 원칙이지만 그렇다고 꼭 갚아야 되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으로 치면 자원봉사의 성격이 강했다.

서구에서는 영국이 자원봉사의 선구자로 꼽힌다.

산업혁명 이후,혼란스러운 사회치안을 담당하는 자경단이 자원봉사자들로 만들어졌다.

또 '클래팜'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상류사회의 도덕성을 질타하는 사회운동을 벌인 것도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이 같은 자원봉사는 미국에서 꽃을 피웠고,천재지변이 잦은 일본에서는 그 조직력이 돋보인다.

자원봉사활동은 절망을 걷어내고 희망을 싹 틔우는 일이다.

세계 도시공원의 모범이랄 수 있는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슬럼화되어 갈 때 지역주민들이 나서 도시숲의 기능을 살려냈고,일본에서는 10년 전 연이어 발생한 후쿠이와 도쿄만의 원유 유출사고 당시 자원봉사자들이 환경재앙을 막아냈다.

지금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태안반도에 자원봉사자들이 밀려들고 있다.

안타까움에 생업을 접고 달려온 주민,수능시험을 끝낸 예비 대학생,단 하루만이라도 일손을 거들겠다며 달려온 중ㆍ고등학생 모두가 검은 절망을 거둬내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인터넷에는 '태안을 살리자'는 사이트들이 속속 만들어지고,자원봉사를 문의하는 희망자들이 넘쳐날 지경이라고 한다.

영하의 추위에 찬 해풍을 맞으며 봉사하는 이들은 흡착포가 부족해 쓰레받기로 원유를 퍼 담는가 하면,기름에 젖은 조류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는 이미 올림픽과 월드컵 등 대형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자원봉사의 의미를 깨우쳤다.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는 것이 자원봉사이고,공동체 의식을 높이는데도 자원봉사만한 게 없다는 사실을.품앗이의 전통이 자원봉사로 거듭나면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