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전고투하는 반도체사업 살리기 위해 올인

1969년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세운 뒤 창업주 특유의 뚝심으로 동부그룹을 중견 그룹으로 일궈낸 김준기 회장.회사가 어려울 땐 개인 재산을 담보로 내놓을 정도로 사업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김 회장에게 반도체 사업은 제철 사업과 함께 반드시 일류로 만들어야 하는 숙원 사업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 놓겠다'던 김 회장의 포부가 요즘은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지난 5월 그룹의 우량 계열사였던 동부한농과 합병하면서 자본 잠식 상태를 벗어나 재도약의 기회를 얻은 동부하이텍의 반도체 사업(옛 동부일렉트로닉스)이 여전히 만성 적자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는 것은 돈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부하이텍이 산업은행에서 빌린 신디케이트론 등 부채가 2조원에 달하는 가운데 당장 내년에 갚아야 할 단기 차입금만 4000억원이다.

게다가 김 회장의 계획대로 동부하이텍이 반도체 수탁가공 업체에서 설계부터 생산,후공정까지 실행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 투자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미 동부하이텍은 그룹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버렸다.

반도체 웨이퍼 회사인 실트론의 지분(49%)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동부하이텍이 지분 100%를 보유한 동부메탈(동부합금철)도 내년 상반기 중 상장해 일부 지분을 내다팔 방침이다.

그룹 관계자는 "상장 후 주가 흐름을 보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지분을 매각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모두 그룹의 숙원 사업인 반도체 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고육책들이다.

문제는 이 같은 그룹 차원의 전방위 지원에도 불구하고 동부하이텍이 세계적 반도체 회사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지난 5월 동부한농과의 합병 후 반도체 부문이 3분기까지 낸 적자는 705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3분기까지의 적자 규모 1704억원보다는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시간 여유가 많은 것도 아니다.

지난해 자본 잠식으로 상장 폐지 위기까지 갔던 동부일렉트로닉스는 동부한농과의 합병으로 회생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지만,지금과 같은 적자가 이어진다면 앞으로 2년 내 다시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 놓아야 할 시간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김 회장이 특유의 뚝심을 앞세워 해법으로 띄운 승부수는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강화다.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시장 규모가 클 뿐더러 이 분야에 진출한 국내 업체들이 많지 않아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동부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이미 기술력을 갖춘 비메모리 전문 회사들을 인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난해 말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전문 기업인 토마토LSI에 이어 올해 7월 CMOS 이미지센서(CIS) 전문 기업인 서울전자통신에 지분 투자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도 동부는 동부한농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 등 비업무용 부동산이나 비핵심 사업 등을 계속 정리하면서 반도체 사업에 올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우선 비메모리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잘한 선택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라며 "하지만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 유동성 위기가 오기 전에 수익 구조를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유창재/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