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 국책금융기관장 인사 난맥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

현 정부에서 차관까지 지낸 유력 인사가 정황상 정상적인 경쟁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기업은행장 응모를 철회하는가 하면 예금보험공사 사장추천위원회는 '우리가 들러리냐'며 기간을 연장해 추가 공모를 받기로 하는 등 국책금융기관장 선임 과정에서 파행이 빚어지고 있다.

진동수 전 재정경제부 차관은 14일 "현 상황에서 면접에 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많은 고민 끝에 면접에 나가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기업은행장 응모를 철회했다.

진 전 차관은 기업은행장 후보추천위원회에 제출한 응모 철회 사유서에서 "행장추천위원회가 (자신을) 후보로 추천하더라도 저의 희망과 기대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엄연한 현실이 저를 무겁게 짓눌렀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정부가 차기 기업은행장을 이미 내정한 상황에서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행장추천위 면접이 시작되기도 전에 청와대 등에서 윤용로 금감위 부위원장을 기업은행장에 내정했다는 보도가 흘러 나오고 금감위가 후임 부위원장 인선에 나섰다는 얘기가 들리는 데 대해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예금보험공사 사장추천위원회는 지난 13일 마감한 사장 공모기간을 18일까지 연장해 재공모하기로 했다.

예보 관계자는 "박대동 금감위 상임위원이 차기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해 자격을 갖춘 사람들조차 응모하지 않았다"며 "사추위가 사장 후보를 3배수로 추천하도록 돼 있는데 현재 응모한 사람이 3명뿐이기 때문에 심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공기업 사장 공모 절차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사실상 내정 인사로 흐른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며 "공모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추천위원들이 후보들의 자질을 꼼꼼히 따지고 인사권자가 이를 존중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공모가 마감된 자산관리공사 사장에는 4명이 서류를 냈지만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를 역임한 이철휘 재정경제부장관 특별보좌관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