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비유하면서 곧잘 등장하는 게 등대다.

인생이라는 긴 항로에서 방황할 때,등대는 한 줄기 희망으로 묘사된다.

등대는 남을 돌보기 위해 외로운 삶을 산다고 한다.

사나운 폭풍이 몰아쳐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환한 빛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

안개가 끼면 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등대는 제 밝은 빛에 자기 모습을 비춰본 적이 없이,그저 눈짓으로 나아갈 길을 말할 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서남쪽 끝에 있는 희망봉 등대는 말 그대로 선원들의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유럽 여러 나라의 배들이 망망대해의 대서양을 지나 인도양으로 가는 기나긴 여정속에서,이 등대를 보며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기 때문이다.

검푸른 지평선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린 등대에게 뱃사람들이 느끼는 애정은 실로 각별했다고 한다.

한반도에 최초로 세워진 등대는 희망과는 아예 거리가 멀었다.

일본과의 통상협정에 의해 1903년 인천 앞바다 팔미도에 강제로 등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서해안 지형에 어두운 일본의 군함과 상선들을 위해서였는데,등대는 곧 침략과 수탈의 전령인 셈이었다.

이후 서쪽 해안을 따라 등대들이 설치됐다.

초창기에 축조된 등대들이 문화재로 등록된다는 소식이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신안의 '가거도 등대(1907)',해남의 '구 목포구 등대(1908)',군산의 '어청도 등대(1912)'로 100년의 뱃길을 밝힌 3곳이다.

문화재청은 남해와 동해 지역의 등대도 그 보존가치를 따져 문화재등록을 검토키로 했다.

세계 처음으로 기원전 280년께 만들어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에 비하면 우리 등대의 역사는 짧다.

그러나 바다와 석양 등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우러진 등대의 모습이나,등탑 내부의 효율적인 설계는 건축기술 연구에 큰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웃의 따뜻한 사랑처럼 서해안을 밝혀온 등대가 기름에 덮여 신음하는 바다를 비추는 심정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