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은행들이 일제히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그 불똥이 중소기업과 개인 고객들에게 튀고 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쏠림현상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경쟁적으로 중기.자영업자 대출에 주력했던 은행들이 최근 들어 대출자산 줄이기에 나서면서 은행돈 쓰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강화된 은행의 자기자본비율 산정 규정인 '바젤Ⅱ'가 시행되면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들은 높아진 은행 문턱 탓에 극심한 자금난을 겪을 게 자명하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의 자금 조이기가 장기화되면 자칫 '은행발 경기 침체'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은행 대출회수 배경

이달 초부터 은행들이 대출 심사 과정에서 엄격한 조건을 내걸어 고객들의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은행은 이렇다 할 명분 없이 본점의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신규 대출 심사도 지나칠 정도로 엄격해져 은행에서 돈 빌리기가 '하늘에서 별따기'처럼 어려워졌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자산 규모가 큰 은행일수록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신규 중기대출을 중단했다.

비록 연말까지 한시적인 조치라고는 해도 중소기업 사장들은 "쓰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멀쩡한 기업에까지 돈줄을 죈다"고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내년 2월까지 상환해야 할 은행채가 5조원에 달하는 데다 보통예금 등 저원가성 예금에서 자금이 계속 빠져나가 대출 재원이 바닥난 탓이다.

다급해진 국민은행은 긴급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6.5%의 금리를 내세워 지역농협의 여유자금까지 유치하기도 했다.

다른 시중 은행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우리은행은 연말까지 주택담보대출 우대금리를 폐지하고 연 1% 이상 수익이 나지 않는 여신에 대해 가급적 만기 연장을 해주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의 한 지점장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에 1%포인트의 가산금리를 붙여 대출을 해줬던 중소기업에 대해 최근 'CD 금리+3%포인트'의 금리로 본부 승인을 의뢰했는데 여신 승인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나은행도 대출액 대비 1%이상 수익이 나지 않는 기업에 대해 금리를 올리거나 만기 연장시 심사를 강화하도록 지도하고 있고 농협은 영업점장 전결금리(0.5~1.5%)를 폐지하고 중기대출을 포함해 모든 대환대출을 금지하고 있다.

◆은행이 경기 침체 원인되나

은행의 돈줄죄기로 직격탄을 맞는 곳은 한계 중소기업들이다.

대기업은 은행 대출보다 자본 시장에서 회사채 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데 반해 중소기업은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아서다.

올 들어 은행들은 정부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이 막히자 중기대출을 급격히 늘려왔다.

하지만 자금 수요가 높은 연말에 은행들이 중기대출을 줄이면서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을 촉발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뜩이나 중소기업들은 지난 8월부터 대부분의 엔화대출 만기 연장이 금지돼 자금 사정이 상당히 어려운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이 대출 회수에 본격 나서면 중소기업 대출의 연체율이 높아져 은행 건전성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 은행들이 2004년 들어 중기대출 신규 취급액을 전년도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줄이면서 중소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고 부도가 크게 증가했던 전례가 있다.

특히 내년에 바젤Ⅱ가 도입되면 은행들이 대출 리스크 관리를 현재보다 강화해 신용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의 은행 이용은 갈수록 어려워지게 된다.

바젤Ⅱ가 시행되면 은행들은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대출 한도와 대출 조건을 결정하게 된다. 이에따라 부채 비율이 낮고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은 위험가중치가 낮아져 대출 한도가 늘어나지만 부채가 많고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은 그 반대가 된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환경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덩치 경쟁만을 일삼던 은행들이 유동성 관리를 잘못한 자신들의 책임을 중소기업 같은 대출자들에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