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6일 정성진 법무부 장관에게 BBK 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를 위해 지휘권 발동을 검토하라고 전격 지시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BBK를 설립했다'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육성이 담긴 2000년 10월 강연 동영상을 공개,한나라당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노 대통령이 신당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점에서 대선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동영상 상황을 보고받은 뒤 정 장관에게 "검찰이 열심히 수사했지만,국민적 의혹 해소와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 재수사를 위한 지휘권 발동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철 민정수석이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청와대가 신당을 도와주고 있다"며 강력 비판했다.

앞서 신당은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BBK와 관련이 없다'는 이 후보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며 이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고 한나라당은 "사실과 다른 마지막 폭로"라면서 동영상 공개의 뒷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이날 밤 마지막 TV토론에서 이 문제를 놓고 격돌했다.

투표를 불과 이틀 앞둔 이번 대선은 '이명박 대세론'과 이를 깨기 위한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얼룩졌다.

지난 8월 한나라당 후보 선출 이후 지속돼온 이명박 대세론은 범여권의 총체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범여권은 'BBK 의혹에서 시작해 BBK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대선기간 내내 BBK를 둘러싼 이 후보의 각종 의혹 캐기에 올인했다.

정동영 신당 후보의 13일 이전 신문광고에 정 후보 얼굴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게 단적인 예다.

이처럼 대선전이 이 후보의 도덕성 시비에 매몰되면서 정책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행정수도 충청 이전 공약과 남북 문제가 승패를 갈랐던 2002년 대선과 달리 이번엔 이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가 대선전 초반 잠시 시빗거리였던 것을 제외하곤 국민의 표심을 자극할 만한 정책 자체가 없었다.

대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지난 10월 열린 남북 정상회담조차 대선 이슈가 되지 못했다.

이제 남은 건 후보 간 '경제대통령' 구호 선점 경쟁이 고작이다.

신당과 한나라당의 대선공약집이 12월 초에야 나온 것도 이런 흐름의 반영이다.

이명박 대세론은 이념,지역 대결도 크게 약화시켰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한국노총이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이 후보와 정책 연대를 선언한 것이나 이 후보가 호남에서 두 자릿수 득표를 바라보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이재창/이심기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