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전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16일(현지시간) ABC방송에 출연, "식료품값과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는 가운데 경제 성장은 위협받고 있다"며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한 것은 아니지만 초기 단계의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냉전이 끝난 이후 동유럽 및 중국의 저가상품 덕분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은 상태를 유지했지만 이제 그런 시대가 종료되고 있다"며 "FRB가 중ㆍ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도록 허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린스펀은 특히 "미 경제가 성장률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침체상태에 빠질 확률은 50% 수준"이라며 "당장의 재정적자를 감수하고라도 집을 잃게 될 처지에 놓인 서민들에게 정부가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문했다.

단기적인 재정적자가 집값이나 금리를 조정하는 것보다 경제에 훨씬 덜 치명적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에 앞서 마틴 펠드스테인 하버드대 교수도 "집값이 하락하는 가운데 소비가 줄어든다면 내년 미국 경제는 쉽게 침체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국내총생산이 감소하고 소비자 물가가 3.5%까지 오르면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에 놓인다"고 경고했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지난 11월 생산자물가가 3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면서 경기침체의 방어벽으로 지적되던 소비마저 유가상승 등으로 눈에 띄게 둔화됐기 때문이다.

마스터카드는 "연말 소비시즌이 시작된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12일까지 20일 동안 여성의류 매출액은 지난해 동기보다 5.7%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여성,특히 가정주부들이 경기둔화를 의식해 소비지출을 억제한 때문으로 풀이됐다.

여성의류는 소비의 주력상품으로 소비동향을 알 수 있는 풍향계로 지적된다.

여성의류 판매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심리가 움츠러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스터카드는 "남성 및 아동 여성의류를 포함한 의류판매액은 지난달 23일 블랙프라이데이 하루 동안만 11% 증가했으나 지난 12일까지 0.5% 증가하는 데 그쳤다"며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 연말소비시즌은 우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당초 미 소비판매연합회는 올 연말 소매매출액이 4745억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4.0%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만일 소비가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면 그렇지 않아도 힘든 경제에 더욱 부담을 지울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