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향후 10년간 20조원을 해외 자원개발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석유ㆍ가스 자주개발률을 지금의 3.8%에서 9년 뒤인 2016년까지 28%로 높여야 하는 정부나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 공기업으로서는 단비를 만난 것이나 다름 없다.

국민연금은 장기 실물투자 자산을 확대함으로써 안정적 자산으로 투자를 다변화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호식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14일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투자계약 서명식에서 "자산이 채권에 집중돼 수익률을 높일 수 없다"며 "주식 비중을 늘리고 있는데 주식보다 안정적으로 수익률을 낼 수 있는 게 뭐냐 해서 자원개발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이번 논의를 시작한 것이 지난 8월이다.

그것도 산업자원부의 '제3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이 발표된 직후다.

그리고 3개월 만인 11월 초에 투자기본계약서 초안에 합의했다.

너무 졸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이사장은 기자간담회 때 '탐사ㆍ개발 광구는 성공률이 5% 미만인데 국민연금이 투자하기에 너무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에 "위험성이 적은 게 있겠죠.위험성이 높은 것은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위험성 판단기준'을 묻자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에 해외 자원개발 관련 인력이 없다'는 지적에 대한 답도 어리숙하긴 마찬가지였다.

"투자위원회 검토를 거칠 때 외부 전문가 자문을 받는다.

전문가는 석유공사 등에 얼마든지 있다."

석유공사가 투자를 제안하는데 세일즈를 해야 하는 석유공사의 자문을 받아 투자하겠다니….간담회 이후에 국민연금 실무자에게 이 같은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해당 실무자도 장기적 전략과 투자제안에 대한 내부 검토를 위해 자체 실무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내년 초에 1~2명 정도 채용에 나설 것이라고만 답했다.

국민연금은 수익성 없는 각종 정부 사업에 동원된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이번에도 또 동원돼 졸속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내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재형 경제부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