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연(鄭珠衍) < 고려대 교수·경제학 >

지난 14일 정부대표인 행정자치부 장관과 공무원노조(공무원 노동조합 총연맹) 대표가 현재 57세로 돼있는 6급 이하 공무원의 정년을 3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결과적으로 정부가 공무원 노조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지평을 여는 첫 단체교섭이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외형적으로만 보면 정부와 노조 간 관계에 긍정적인 효과도 엿보인다.

우선 사용자인 정부가 노조의 교섭권을 인정함으로써 노사관계의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

하위직 공무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동시에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에서 고령자 고용안정 대책을 마련한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이번 합의에는 우려되는 점들이 너무 많다.

우선 고용관계를 규제하고 있는 공공 부문의 노사관계 틀과 관련해 정부가 노동조합을 통해 이 부분을 어떤 방향으로 개혁하겠다는 장기적인 비전이 없다.

대통령 단임제인 정부의 지배구조 하에서는 설령 그런 비전이 수립돼도 그 실행은 다음 정권의 부담으로 떠넘길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지속될 비전이 없는 상황하에서 항상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노조와의 교섭에 끌려다니면서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고,이것은 다음 세대나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 대략적인 추산치에 따르면 현재 합의된 대로 정년이 3년 연장될 때 첫 1년에 3조원,그리고 3년 합산시 9조원의 예산증가가 필요하고 공무원 연금 증가분을 포함하면 이 예산은 더욱 커진다.

특히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 5년간 공무원 수는 2만8000명 이상이 증가해왔다.

이런 공무원 수의 증가나 정년연장은 세계적인 공공부문 개혁 추세에도 역행한다.

올해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공공부문의 공무원 특별연금혜택을 축소하는 개혁을 주창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또 이에 반발하는 공공부문 노조의 총파업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지지로 이 개혁은 진행 중이다.

프랑스 국민들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2007년에 경쟁국인 독일의 실업률이 6.7%이고 경제성장률이 3%대에 이른 반면에 프랑스는 8.4%의 실업률과 2%에도 못 미치는 경제성장률 때문에 국가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도 한국의 행정고시 출신에 해당하는 고위직 공무원들의 자동승진 보장 대신 성과주의를 도입하고 이들의 퇴직 후 낙하산인사를 막고 연금을 일반기업 수준으로 하향조정하는 개혁을 검토 중이다.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비대한 공공부문을 개혁하려는 시도들이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민간 기업들은 외국기업들과의 경쟁에 직면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겠다고 분발하고 있고 가계경제도 높은 실업과 낮아진 소득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 현 정부가 추진해온 공무원 수 증대를 비롯해 이들의 정년을 연장하는 시도는 세금부담 증가로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이고 장기적으로 고려하면서 정부의 규모나 연금,정년 등도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중앙정부나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공무원을 늘리는 추세와 달리 지난달 1일 서울시는 올해부터 2010년까지 서울시 공무원 정원의 13%인 1300명을 줄이고 불필요한 조직을 통폐합해 경쟁체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또 불성실한 시 공무원에 대한 퇴출제도 시행 중이다.

그 취지는 세계 각국의 공조직 개혁 추세에 맞춰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요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민이나 기업이 어렵게 번 소득에서 납부하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부문의 효율성에 대해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국민소득 3만달러의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민간부문뿐만 아니라 공공부문도 허리띠를 다시 한 번 졸라매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