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 B호텔의 연회판촉팀장은 연회장 예약 상황이 부진해 골치를 앓고 있다.

그는 "예년엔 황금기간인 15일부터 말일까지의 연회장 예약이 11월에 이미 꽉 찼는데,올해는 아직 80%에도 못 미친다"며 "올해처럼 손님이 없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유명 피부ㆍ성형 전문 병원인 A사는 최근 긴급 회의를 가졌다.

2001년 개원 이래 처음으로 12월 매출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A병원 원장은 "12월은 방학과 겨울휴가를 이용해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피부를 손질하는 대목 시즌"이라며 "그런데도 특수는커녕 이달 들어 14일까지 매출이 2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유명 피부과 체인 C병원도 14일까지 전년 대비 매출이 10%가량 감소했다고 밝혔다.

소비시장 곳곳에 빨간 불이 켜졌다.

주가 불안에다 유동성 부족에 빠진 은행들의 대출 축소,국내외 경기 부진에 따른 기업들의 경영긴축과 정치 환경을 의식한 몸사리기,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폭탄'에 따른 가계 소비심리 위축 등이 겹치면서 '연말 특수(特需)'가 실종된 것.

◆특급호텔ㆍ고급 레스토랑 기업 고객 '썰물'

연말 경기를 달궜던 특급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들이 기업 고객의 발길이 주춤해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B호텔 관계자는 "11월만 해도 식음 시설 매출이 전년 대비 30% 증가하는 등 순조롭게 연말 시즌이 시작되는가 했는데 12월 들어 분위기가 돌변했다"고 말했다.

강남의 B호텔 관계자는 "레스토랑은 연인,가족 등 개인 고객이 많아 지금 금요일 예약을 하려면 어려울 정도로 붐빈다"면서도 "씀씀이가 큰 기업들의 접대 수요가 확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금융회사들이 VIP 행사를 열고는 있지만 1인당 식사비용이 지난해 10만원 수준에서 올해는 8만원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청담동의 한 와인 레스토랑 대표는 "하룻밤에 수백만원 매출은 족히 올릴 만한 기업체 사장 및 임원 모임이 이달 들어 몇 건 취소됐다"며 아쉬워했다.

◆백화점 매출 부진으로 '비상'

연말 선물 수요 등으로 북적거렸던 백화점들도 12월 들어 매출이 오히려 뒷걸음질,비상이 걸렸다.

롯데백화점은 12월 매출(16일까지)이 전년 대비 1% 감소했고,신세계와 현대백화점도 매출이 각각 3%,2% 늘어나는 데 그쳐 작년 같은 기간에 턱없이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연말인 데도 선물 수요는 거의 없고 실수요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필수품인 식품이 그나마 매출을 받쳐줄 뿐 고가 화장품,남성 액세서리,보석류,여성 캐릭터 캐주얼 정장 등 선물용이나 꼭 없어도 되는 상품군 매출은 예외없이 부진하다"고 덧붙였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백화점들은 11월엔 매출이 평균 8.5% 증가했었다.

12월 들어 매출이 늘기는커녕 움츠러들고 있는데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세일 기간이 작년보다 5일 줄어든 탓도 있지만,국내 정치ㆍ경제 상황이 소비심리를 악화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의류업계에도 불황의 그늘이 짙다.

캐주얼 업체 K사 사장은 "연 매출 1000억원 이하의 중소 의류업체들마다 돈이 말라 아우성"이라며 "겨울 날씨가 따뜻해 장사는 안되는 데 은행들은 대출 회수하려고 혈안이 돼 있으니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류업체 관계자는 "작년엔 반짝 추위라도 있었지만 올해는 겨울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몇몇 대기업들을 제외하면 내년에 살아남을 중소 의류업체가 몇이나 될지 알 수 없다"고 푸념했다.

박동휘/안상미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