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경기가 돌연 활기를 잃은 원인으로 기업들의 '몸 사리기'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예년 같으면 기업 내부의 송년행사나 부서별 회식을 외부 연회장이나 고급 식당에서 성대하게 여는 곳이 적지 않았지만 올해는 행사 규모를 축소하거나 취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

한식 전문점이자 비즈니스 접대 손님이 많은 Y음식점 관계자는 "가족 단위 손님이나 동창회 등의 모임 덕분에 그럭저럭 좌석은 채워지고 있지만 매출은 예년의 70% 수준에 불과하다"며 "씀씀이가 큰 법인고객들의 접대 회식이 크게 줄어든 탓"이라고 말했다.

시청 주변에서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점심 손님은 그런대로 몰리지만 술자리를 곁들이는 저녁엔 부쩍 썰렁해졌다"며 "삼성그룹 비자금 수사가 직격탄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송년 경기가 사그라들면서 택시업계의 주름살은 더 깊어지고 있다.

서울의 잠실 종합운동장 앞과 강남역 일대 등 긴 시간 정차가 가능한 곳에는 저녁 피크시간대인 밤 10~12시 사이에도 수십대의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기 일쑤다.

개인택시 운전사 L씨는 "예년에는 그래도 강남과 북창동,인사동 등 고급 식당과 한정식집이 몰려있는 곳에서는 손님을 찾기가 어렵지 않았는데,이달 들어서는 연중 손님이 적은 기간으로 꼽히는 지난달과 별반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영업이 안된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연말에 배포하는 선물용 달력 숫자를 줄일 정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높은 데다 금융시장 불안 등이 겹치면서 긴축 경영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내년엔 필수 비용 외에는 대부분 올해보다 예산이 삭감될 것 같다"며 "줄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줄여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한 제지회사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아 달력용지 수요가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벽걸이용과 탁상용 등으로 지난해 약 1만t 정도를 공급했으나 올해는 7000t정도로 약 30% 감소했다"고 말했다.

또 삼성그룹은 매년 배포하던 VIP용 달력을 올해 중단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효근 대우증권 경제금융 파트장은 "국내에 긍정적인 성장 동력이 있더라도 이것만으론 글로벌 경기 하락 압력을 막기엔 역부족일 것"이라며 "내년 상황은 올해보다 더 좋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