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인수에 관심 있는 미국 투자은행(IB) 실무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들은 한국 측에 직원 인건비 관련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한국 실무자들은 상사의 허락 없이는 제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화가 난 미국 IB 관계자들은 한국 측 실무자의 상사에게 직접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협상은 물건너갔다.'

17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을 찾은 진 브렛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비즈니스 스쿨 갈등조정ㆍ조직관리 석좌교수(60)는 문화적 갈등으로 깨진 협상 사례로 한국 케이스를 소개했다.

그는 "한국 기업 인수 협상이 깨진 가장 큰 이유는 문화적 차이 때문"이라며 "한국처럼 위계 질서가 뚜렷한 직장문화에선 불만이 있어도 상사에게 직접 불평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꼬집었다.

1997년 켈로그 스쿨에 '문화 간 협상(Cross-cultural Negotiation)' 강의를 처음 도입한 그는 "다문화 조직의 갈등은 결정적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 인식하기 어렵다"며 "갈등이 커지기 전에 초기 진화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다문화 조직이 맞닥뜨릴 수 있는 갈등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다문화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은 크게 네 가지다.

갈등의 주된 원인은 커뮤니케이션 방식 차이다.

서구 문화는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선호한다.

협상 테이블 앞에 앉아 직접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중요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비서구 문화는 간접적 방식을 선호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 꼬치꼬치 캐묻기보다는 문서 작성으로 중요 정보를 얻는다.

의사결정 방식의 차이도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한국인들은 전날 1~3단계까지 협상을 끝냈더라도 다음 날 재검토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한번 검토한 사항에 대한 재검토를 용납할 수 없다.

그 밖에 언어적 차이나 조직문화가 '수평적이냐,수직적이냐'는 문제도 갈등의 주요 변수다.

브렛 교수는 이 같은 갈등에 대처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수용(Adaptation)'이다.

이를 위해서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려는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구조적 개입(Structural Intervention)'은 조직의 구조나 역할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방법이다.

트리형으로 구성된 조직을 기능별로 세분화하는 해법이다.

권위 있는 상사가 개입(Managerial Intervention)하는 것도 다문화팀이 구성돼 업무를 시작한 초기에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가장 극단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 두 가지는 퇴출(Exit)과 인내(Lumping)다.

퇴출은 타 조직으로 이동이고 인내는 위 네 가지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경우 꾹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는 "다문화팀은 갈등의 소지가 많지만 적절한 방법을 동원해 해결한다면 팀을 보다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다"며 "조직 내 문화 갈등을 해결하려는 구성원들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