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연말 정기인사를 통해 도입한 '사내 독립기업제(CIC)'는 한마디로 삼성전자의 '총괄'이나 LG전자의 '사업본부 체제'와 비슷한 경영시스템이다.

예컨대 정유사업,석유화학사업 등 각각의 사업단위를 총괄하는 조직이지만,독립된 회사의 형태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부문 체제'와는 구별된다.

SK는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최태원 회장이 꾸준히 강조해온 자율.책임경영 체제를 완성하게 됐다.최 회장은 "한두 명이 기업을 이끄는 시대는 끝났다"며 "모든 구성원이 '내가 회사'라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어떻게 운영되나

CIC는 '회사 내 회사(Company in Company)'의 약자다.이번 조직개편으로 SK에너지 SK네트웍스 SK텔레콤 등 3개 주력 계열사는 각각 4개의 CIC로 재편됐다.SK에너지는 △김명곤 사장의 R&M(정유 및 마케팅) 컴퍼니 △유정준 사장의 R&C(자원개발 및 석유화학) △P&T(기술지원) 컴퍼니(사장은 외부 영입 계획) △김준호 사장의 경영지원 컴퍼니 등 4개의 CIC로 구성됐다.

각 CIC는 △투자와 신규사업 개발에 필요한 기획기능 △회계 자금 구매 등 재무기능 △구성원 평가 등 인사기능 △법무.총무 기능 등 개별 기업 운영에 필요한 모든 조직과 기능을 갖게 된다.따라서 CIC장은 별도의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똑같은 활동을 하게 되는 셈이다.

신헌철 SK에너지 사장,정만원 SK네트웍스 사장,김신배 SK텔레콤 사장 등 최고경영자들(CEO)은 이번 인사에서 모두 유임되며 각 CIC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시너지를 창출하는 '총괄 사장' 역할을 맡게 됐다.총괄 사장들은 각 CIC장들에 대한 평가 및 인사권을 통해 CIC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SK그룹 '회사 내회사' 전격 도입] 사업부문에 돈ㆍ사람 운용 전권부여
◆어떤 효과를 기대하나

사실 SK그룹은 3년 전인 2004년에도 CIC제도 도입을 추진했었다.재벌 총수 중심으로 운영되던 기존의 경영방식을 시스템에 의한 경영방식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최 회장의 생각에서다.하지만 당시는 상무급이 맡고 있는 사업부에 예산 및 인사 권한을 일부 위임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한꺼번에 사업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건 무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이후에도 시스템 경영에 대한 의지를 계속 내비쳤던 최 회장은 지난 7월 지주회사 전환에 맞춰 CIC제도를 전격 도입키로 했다.각사의 이사회도 자율경영의 장점을 인정해 특별한 반대 없이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SK 계열사들은 각 CIC장들이 직접 자신의 조직을 경영하면서 성과에 대한 책임까지 지는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CIC장들로서는 자신의 경영 능력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CIC장들은 스스로의 책임이 막중해진 만큼 경영실적뿐 아니라 성장 사업 발굴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SK는 보고 있다.

구성원들도 성과에 따라 연말 보너스가 크게 차이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임할 것이라는 게 SK의 기대다.탄력적인 조직운영도 기대되는 효과 중 하나다.

◆과당경쟁은 경계해야


국내에서 이 같은 제도를 먼저 도입한 회사는 삼성전자,LG전자와 같은 전자업체들이다.LG전자의 경우 최근 '소사업부장' 제도를 부장급까지 확대했을 만큼 자율.책임경영 시스템을 선호한다.

하지만 자칫 CIC간에 과당경쟁이 벌어질 경우 오히려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게 이 회사들의 충고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CIC간에 과도하게 두터운 벽을 쳐놓을 경우 원활한 업무 협조가 안될 수 있고,조직문화도 배타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며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만 결국 하나의 회사라는 인식을 구성원들에게 강조해야 이 같은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