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초 경제 5단체가 주최한 신년인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웅산 테러사건이 발생한 1984년을 제외하면 이 행사가 생긴 이래 대통령이 불참하기는 처음이었다.

"얼마 전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에서 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났기 때문"이었다는 게 불참의 이유였다.

하지만 경제계에선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격려하는 자리인데,그 횟수가 뭐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다"는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론 참여정부에서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만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권 중반기엔 주요 그룹 총수들과도 공식,비공식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문제는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주된 만남이 상생 협력회의라는 틀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인들은 대통령을 만나 어떤 상생의 보따리를 풀어 놓아야 할지를 늘 고민해야 했다.

이 회의에 꾸준히 참석한 한 대기업 회장은 "중소기업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대통령 앞에서 해야하는 부담스러운 자리였던 만큼 경제 현안에 대한 허심탄회한 얘기를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며 "좀 더 편하게 대통령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긴급 설문조사에서 경제를 살리려면 새 대통령이 기업인들부터 만나야 한다고 주문한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자주 만나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9.3%가 동의(매우 동의 포함)한다고 답했다.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아무리 자주 만나더라도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국민은 없을 것이라는 시대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뒷거래 관행 등을 언급하며 만남을 주저한 것은 매우 잘못된 태도라는 비판이다.

새 정부의 내각에 기업인 출신을 과감하게 등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은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경제 관련 부처 장관에 기업인 출신을 영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는가'라는 질문에 '매우 동의한다'거나 '동의한다'는 응답이 85.3%에 달했다.

주관식 응답 중에는 "기업인들과 민간에서 경험을 쌓은 관료 출신들을 적극 등용해 폐쇄적인 공직 사회에 경쟁과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어야 한다"는 답도 있었다.

출자총액제한 제도나 금산분리 등 참여정부가 고집스럽게 유지해온 정책에 대해서는 새 정부가 전향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경우 점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45.3%로 가장 많았고,폐지해야 한다는 답도 19.3%에 달했다.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6.0%에 불과했다.

금산분리 문제도 전체의 48.7%가 점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기업 정서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83.4%는 우리나라의 반기업 정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심각하다고 답했고,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윤리경영ㆍ투명경영 유도(46.7%)와 더불어 교과서의 반기업,반시장적 내용 수정(15.3%),경제교육 강화(12.7%),기업인 중용(8.7%),사회지도층에 대한 시장경제 교육(8.0%) 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참여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 든 수정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과거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이 보호와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늦추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에 대해 응답자의 64.0%가 '대체로 공감한다'고 답했다.

특히 참여정부의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정책에 대해서는 22.7%만이 '대체로 성과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반대로 '별로 성과가 없었다'거나 '전혀 성과가 없었다'는 부정적인 답은 74.6%였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