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대통령선거 투표일인 19일 오후 6시 정각 시내 한 호텔에서 TV방송을 통해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자못 숙연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66번째 생일이자 37번째 결혼기념일인 이날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인 오전 7시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 가회동 자택을 나섰던 이 당선자의 하루는 길었지만 환희와 영광으로 가득 찼다.

그가 이날 하루에 가장 많이 한 말은 "감사하다" "고맙다"였다.

선거기간 내내 끊이지 않았던 범여권의 `네거티브 공세'에도 불구하고 압승을 이끌어 준 국민의 성원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승리를 확정지은 이후 그는 모든 연설에서 감사의 말을 빼놓지 않았다.

이 당선자가 공식적으로 당선 기자회견을 한 것은 개표가 시작된 지 약 4시간 뒤인 오후 9시 50분께. 경쟁자인 무소속 이회창,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이미 `승복' 기자회견을 연 이후였다.

당사를 에워싼 1천여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여의도 당사에 들어선 그는 당사 2층에 임시로 마련된 선거종합상황실에 입장, 강재섭 대표 등 선대위 관계자들과 일일이 악수한 뒤 당선 기자회견을 가졌다.

개표가 50%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러차례 회견을 사양했으나 "정동영, 이회창 후보가 이미 회견을 했다"는 나경원 대변인의 전언에 못이기는 척 마이크를 든 그는 "국민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라며 운을 뗀 뒤 "국민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짧은 연설을 마무리했다.

잠시 자리에 앉아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이 후보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 이번에는 당직자 및 선대위 관계자들에게 역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번에는 여유를 찾은 듯 때때로 농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남들보다 갑절로 고마움을 전해야 하는데 제가 CEO(최고경영자)를 오래 해서 마음으로는 고맙게 생각해도 표현을 잘 못한다"면서 "눈이 크면 눈동자를 보고 이해한다고 하지만 눈이 작아서 눈을 봐도 이해를 잘 못한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또 "막판 박근혜 전 대표께서 전국을 다니며 유세를 해준 것도 큰 힘이 되었다"며 박 전 대표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후보는 이어 100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로 발디딜 틈 없는 기자실에 들러서는 밝은 표정으로 "어느 신문에 보니 이명박 후보를 따라다닌 기자는 항상 배가 고팠다고 하는데 진짜냐. 나는 휴게소 다니면서 (기자들에게) 커피도 사주고 빵도 사줬는데.."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는 "여러분이 걱정해줘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지만 제가 지금 인사를 드리는 게 시간이 좀 빠른 것 같다"면서 "아직 (개표율이) 50%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빠르긴 하지만 유력한 두 후보께서 이미 회견을 했기 때문에 빠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인사드린다"며 여유를 보였다.

이 후보는 당사 앞으로 나와 지지자들에게 거듭 사례했다.

미리 마련된 연단에 올라선 그는 함박미소를 지으며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지지자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연방 `고맙다'는 말을 쏟아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청계천에서도 무대에 올라서자마자 "고맙고, 고맙고 정말 고맙다"며 머리를 숙였고, 서울시청 앞에서도 "선거기간 저와 함께 한 분들 정말 고맙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특히 시청앞 연설에서 "저를 지지한 여러분과 저의 반대편에 있던 여러분, 저를 힘들게 했던 여러분, 때론 울분을 참지 못하게 했던 상대들도 내일부터는 하나가 되길 제안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동영, 이회창, 문국현, 권영길, 이인제 후보 등을 일일이 거명한 뒤 "이 사람들 서로 오늘부터는 용서하고 이해하고 하나가 돼서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후보는 앞서 이날 오전 효창공원에서 열린 `매헌 윤봉길 의사 75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뒤 시내 한 호텔에서 20일에 발표할 기자회견문을 작성하고, 당협위원장들과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방송 출연에 대비해 호텔에서 이발도 했다는 후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huma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