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이명박 시대] 재계의 관심과 기대는 ‥ M&A시장 판도변화 오나
"한달만 참자"

지난달 중순 서울 시내 모처에서 열린 송년모임에 참석한 재계 인사들은 이런 건배사를 연거푸 외쳐댔다.

한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1년만 참자"며 술잔을 부딪히던 작년을 떠올리면 분위기는 한결 나아진 편이었다.

'참여정부'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경제인들의 설움을 잘 대변해주는 장면이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재계인사들과 경제단체가 숨죽여 울분을 토해내던 일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에는 재계나 경제단체들이 요구했던 핵심 사항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며 "새 정권 출범을 계기로 재계 분위기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M&A시장 구도변화 올까

내년 M&A(인수ㆍ합병)시장을 뜨겁게 달굴 대형 매물로는 현대건설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반도체 등이 꼽힌다.

업계에서는 이명박 당선자의 성향에 비춰볼 때 이들 기업의 M&A전에서 철저한 시장경제 원칙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정치적 이유로 알게모르게 불이익을 받아왔던 기업들의 행보도 한결 홀가분해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관심을 끄는 기업은 현대건설 인수 대상자.현대건설은 이명박 당선자가 꿈을 키워온 터전이기도 해 더욱 눈길이 간다.

현대중공업과 현대그룹,두산그룹 등이 인수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의 경우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의 과거 정치적 행보가 그동안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라며 "정 의원이 지지한 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나서도 최소한 불이익은 받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GS 포스코 두산 외에 삼성(삼성중공업)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삼성은 사회 분위기를 의식,속내를 드러내지 못했지만 차기 정부에서 '반(反)삼성' 여론보다는 경제논리가 힘을 얻을 경우 M&A 발걸음이 지금보다는 훨씬 가벼워질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우건설 매각 때는 인수 대상기업 선정 기준이 중간에 바뀌면서 정치적 특혜 논란이 벌어지는 등 잡음이 많았다"며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는 M&A시장에도 경제외적 요인보다는 철저한 경제논리로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기업들의 M&A 행보가 훨씬 자유로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인 '사법 족쇄' 풀릴까

'사법처리된 기업인들의 특별사면' 여부에도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위축된 경제를 되살리고,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사기진작 차원에서 특별사면의 폭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특히 이명박 당선자가 20일 기자회견에서 "사회통합과 경제살리기에 주력하겠다"고 밝히면서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재계가 바라는 특별사면 대상 기업인으로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정몽원 한라건설 회장,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등 50여명에 달한다.

재계에서는 차기 정부 출범 직후인 3ㆍ1절에 특별사면을 기대하기는 어렵더라도 석가탄신일(내년 5월22일)에는 대규모 특사를 기대해볼수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하고 있다.

이희범 한국무역협회장은 "우리경제가 짧은 기간 내에 높은 성장을 달성한 것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인들의 왕성한 활동 덕분"이라며 "사상 처음으로 CEO 출신의 대통령을 맞는 만큼 특별사면을 통해 기업인들을 격려하고 기업가 정신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특별사면 뿐만아니라 차기 정부에서는 기업인들에 대한 사법처리도 종전보다는 훨씬 신중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사관계 힘의 균형 복원될까

'안정적인 노사 관계'는 재계가 이명박 당선자에게 바라는 요구사항 중 단연 '1순위'다.

CEO 대통령답게 과거 두 정권을 거치는 10년동안 노조쪽으로 기울어버린 노사간 힘의 균형이 원상복구될 것이란 기대에서다.

특히 이 당선자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키고 정치노조를 없애겠다"고 약속한 만큼 불법파업 등이 잦아들 것으로 재계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전무는 "참여정부 시절에는 '법과 원칙'보다는 '노동계 달래기'에 치중한 측면이 많았다"며 "노사문제에 법과 원칙이 확립되면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도 늘어나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노조를 둔 현대자동차 관계자도 "최소한 한ㆍ미 FTA(자유무역협정) 반대 파업과 같은 정치파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엄정하게 대처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물론 이 당선자를 바라보는 노동계의 시각이 싸늘한 건 당연한 일.민주노총은 "이 당선자의 공약은 노동자들을 배제한 친자본적인 정책"이라며 일전도 불사한다는 기세다.

이 때문에 취임 초기에는 노사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노동계는 늘 '새 정부 길들이기'를 해온 만큼 단기적으로는 노사관계가 악화될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노동계의 강경투쟁이 더 이상 국민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 당선자가 왜곡된 노사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단계,정경협력 채널될까

그동안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개혁의 대상이었다.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할 말도 못했다.

청와대와 재계는 '멀고도 불편한' 관계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초 경제5단체가 주최한 신년 인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웅산 테러'가 터진 1984년을 제외하면 처음있는 일이었다.

지난 10월 초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방북 수행원 명단에는 경제단체 인사들의 이름이 한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서는 경제단체들이 '쓴소리'의 주체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공동 개발하는 관계로 180도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운영의 파트너로서의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되면서 정부와 재계의 신데탕트(화해ㆍ협력)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대통령과 경제단체가 긴밀한 협력체제를 유지하면서 만남의 기회도 잦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이 당선자와 조석래 전경련회장과는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이승철 전경련 전무는 "최근 국무총리와 전경련 회장이 공동 위원장을 맡는 '국가경쟁력강화 민관 위원회'를 만들자고 정부에 제의했다"며 "이명박 당선자의 성향을 볼 때 새 정부에서 이같은 제안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과거에 비해 기업의 목소리를 높일수 있고 애로사항도 당당하게 얘기할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최고경영자(CEO) 출신 답게 경제단체와 호흡을 잘 맞출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건호/오상헌/유창재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