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명과 남성 3명이 라운드하고 있다.

'내기'가 걸린 18번홀 그린에서 여성이 퍼트할 차례.그런데 퍼트라인이 까다로워 보였다.

여성이 동반자들에게 제안을 했다.

"이 퍼트를 넣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보답하겠노라"고.먼저 A가 "약간 내리막에 홀 오른쪽 한 컵을 보고 치라"고 조언했다.

B는 "내리막이지만,홀을 지나가게 쳐야 홀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C.그는 "그 퍼트 OK주마"라고 했다.

골프와 유머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유머가 있는 골프는 즐겁지만,유머 없는 스코어 위주의 골프는 밋밋하기 짝이 없다.

올해 필드에서 유행했던 골프유머를 모았다.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게 골프의 속성=골프가 뜻대로 친대로 되지 않는 '주말 골퍼'들을 빗댄 말이 많았다.

주말 골퍼들이 동반자한테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굿샷!''거리 늘었네''OK'가 아니다.

그것은 "나 요즘 완전히 망가졌어"다.

이와 함께 플레이 도중 동반자들로부터 '어?''으악!'이란 말이 들려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내기'를 즐기고,상대방이 무너지기를 은근히 바라는 골퍼의 속마음을 드러낸 말이 아닐 수 없다.

클럽을 한글로 풀이한 말도 있다.

드라이버는 '왜 이러지?',페어웨이 우드는 '앗!',퍼터는 '이상하게 안되네'다.

이 말에 선뜻 수긍하지 않은 골퍼는 수준급이라고 자부해도 좋다.

당일 라운드에서 나온 최악의 샷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은 '뽀오∼ㄹ'이고 굿샷의 반대말은 '가서 봅시다'이다.

페어웨이의 사전적 뜻은 '아마추어 골퍼가 볼을 떨구기 어려운 넓고 평평한 지역'이란다.

재치가 넘친다.

그런가하면 초반에 헤매다 라운드가 끝날 무렵 제 기량을 보이는 골퍼들 사이에서는 "쌀 떨어지니 입맛 도네!"라는 말이 유행했다.

'27홀 체질'의 다른 표현이다.

라운드가 뜸할 수밖에 없는 월급쟁이 골퍼들의 일면을 보는 듯하다.

◆샷이 잘 안 될 때 분위기 띄우는 유머=바람막이와 관련된 것이 백미다.

초보자가 상급자들을 따라 필드에 나갔는데,동반자들이 잔디를 뜯어 날려보는 것이었다.

쳤다 하면 땅볼만 내던 초보 골퍼도 그들을 따라 잔디를 날렸다.

동반자들이 "초보 주제에 바람 방향을 알아서 어쩌겠다는 것이야"라며 핀잔을 주자 이 골퍼는 "바람막이를 꺼내 입어야 할지,말지를 판단하려고 풀을 날려본 걸세"라고 말해 동반자들을 즐겁게 했다.

골퍼가 치매를 자가진단하는 방법도 웃음을 자아냈다.

'왼쪽 맞지?' 하면서 오른쪽으로 퍼팅하거나 다른 사람의 볼로 세컨드 샷을 하는 골퍼들은 치매 '초기 증세'라고 한다.

목욕탕에서 '두발용'이라고 써있는 것을 두 발에 바르는 경우,다른 사람 속옷을 입고 나오거나 분실물 보관함에 있는 것을 보고 가격이 얼마냐고 묻는 골퍼는 '중기 증세'다.

치매 '말기 증세'는 위험수준이다.

①깃대를 들고 다음홀로 이동한다.

②캐디 보고 '여보'라고 부른다.

또 귀가 후엔 아내 보고 '언니'라고 한다.

③손에 볼을 들고서 캐디한테 볼을 달라고 한다.

④카트를 타고 캐디에게 라디오를 틀어달라고 한다.

⑤탕 안에서 동반자를 보고 '오랜만이네'라며 악수를 청한다.

◆자학적인 표현=욕설과 연계해 동반자를 낮잡아보거나 자학하는 표현도 여전했다.

그 시초는 '택시'다.

앞 조가 세컨드샷을 하고 이동했는 데도 "쳐도 돼?" 하고 물으면 캐디는 "사장님은 쳐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한테는 '택시'(택도 없다∼)라고 한다는 것.이와 관련,방송사에 기댄 표현이 많다.

'KBS'는 '깃대 빼고 비켜∼',MBC는 '마크하고 비켜∼',SBS는 '서있지 말고 비켜∼'나 '살살 봐주면서 쳐∼',그리고 'TBS'는 '티 뽑고 비켜∼'('오너'가 아닌데도 먼저 치려고 할 경우)라는 뜻.최고경영자를 뜻하는 CEO를 빗댄 표현까지 등장했다.

볼을 그린에 올렸는데 깃대에서 아주 멀 경우 '∼이것도 온이냐'는 뜻이란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