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가 사모펀드 서버러스 캐피털에 팔린 지 4개월 만에 다시 위기를 맞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크라이슬러가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산업계의 지형을 바꿔놓는 투자로 이름을 날린 서버러스도 차입매수 붐이 꺼지는 상황에선 손쓸 도리가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월지는 19일 로버트 나델리 크라이슬러 최고경영자(CEO)가 이달 초 종업원과의 간담회에서 "회사가 올해 상당한 적자를 볼 수밖에 없으며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점을 인터뷰에서 확인해주었다고 보도했다.

나델리 CEO는 지난 간담회에서 "크라이슬러가 파산하느냐고 묻는다면 기술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경영 전반을 살펴보면 그렇다"고 답했다.

또 "파산을 막는 유일한 버팀목은 100억달러 규모의 투자자들이 우리를 아직 믿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나델리 CEO는 그러나 "당시 발언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뜻으로 한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지난 8월 초 취임한 나델리 CEO는 크라이슬러의 판매량과 비용 절감 노력이 목표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부품 등에서 2억5000만~3억달러 절감 목표를 잡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에 실제론 100만달러밖에 절감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모델은 내부를 값싼 플라스틱 제품으로 마감하거나 소음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지적됐다.

연료 절감 기술도 낙후돼 있다.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 연구개발을 독려해야 하는 상황인데 서브프라임 위기와 경기 둔화로 내년 판매량은 10년래 최악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초 나델리와 짐 프레스 부회장은 내년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비용 절감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했었다.

지난달엔 원래 계획보다 두 배 많은 2만4000명의 인력 감원 계획을 밝히며 의욕을 보였다.

여기서 생긴 돈을 하이브리드카 등을 개발하는 데 투입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내년에도 다시 순손실이 불가피해지는 형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지난 10월에 미국 자동차노조(UAW)가 인건비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새 임단협 조건에 합의해 한숨은 돌렸다.

이로써 장부상에서 수십억 달러의 부담은 줄였지만 직원 의료비 지원을 위한 펀드 조성에 2010년까지 88억달러를 출연해야 한다.

현재의 생산 및 판매 실적도 부진하다.

올해 크라이슬러는 총 280만대 차량을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현재까지 260만대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지난 10월 판매량이 9% 감소할 정도로 하반기에 실적이 특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