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언이의 공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1988년 2월25일.김옥숙 여사는 제13대 대통령 취임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고 한다.

대화 속 주인공은 노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최고의 위세를 떨쳤던 박철언 전 정무장관이다.

김 여사의 고종사촌 동생인 그는 불행히도 '슬롯머신 사건'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법적 처벌을 받았다.

14대 김영삼 정부 때는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가 이른바 '김현철 게이트'로 사법 처리됐으며, 15대 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의 아들들이 각종 '게이트'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친ㆍ인척 관리 부실,측근ㆍ보은 인사가 초래한 폐해들이다.

한국 통치사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바로 이런 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황태자' '2인자' '왕의 남자' 등의 호칭을 들으며 호가호위(狐假虎威)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시야를 가리고 귀를 멀게 하면서 각종 비리 게이트에 연루되기도 했다.

군사정권 시절이든,문민정권 시절이든 정권을 이어가며 발생해 국력 소모와 대통령의 레임덕을 초래한 후진국형 병폐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앞으로 5년간 결코 밟아서는 안될 전철(前轍)들이다.

이 당선자는 물론 대선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엄격한 친ㆍ인척 관리를 약속했다.

"제도적으로도 관리해야 하지만 그 이전에 나는 가족적 측면에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

왜? 우리 가족과 내 주위에 있는 형제들은 이권으로라도 돈을 챙겨야 하는 그런 게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이 넷이나 돼도 (선거) 캠프에 전혀 들어와 있지 않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선 레이스 내내 독보적인 선두 자리를 유지하면서 당선자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지근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특보라는 직함의 명함을 들고 다닌 사람만도 몇 명인가.

"이 당선자는 국민들이 경제 살리기 능력을 믿고 대선 과정에서 제기됐던 이 당선자 본인의 의혹들을 눈감아준 측면이 없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도 이 당선자는 측근과 친ㆍ인척 관리에 더욱 엄격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아무리 공이 컸다고 해도 필요하다면 '토사구팽(兎死狗烹)'할 수 있어야 한다."(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