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엘리트 '77세대'가 중국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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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77세대'가 주목받고 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문화대혁명(1966~76년)이 끝난 다음 해인 1977년 대학에 입학한 이들 세대가 중국을 이끄는 엘리트 층으로 부상했다고 24일 보도했다.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급부상한 리커창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영화감독 장이머우 등이 대표적인 77세대 인물들.1965년 이후 10여년 만에 치러진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한 최고의 엘리트다.
1977년 실시된 대학 입시에는 13세부터 37세까지 570만명이 몰렸고 이 중 4.7%(27만3000명)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난징에서 중문학 교수로 일하는 한시밍(50)은 "우리는 단지 재능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문혁(文革) 때 베이징 외곽 농촌으로 하방(下放·지식인을 농촌 등 노동 현장으로 내려 보낸 일)돼 돼지 사육장 등에서 일하던 안핑은 당시 19세였다.
그는 "이 같은 생활을 계속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막노동에서 탈출할 기회를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고 회상했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현재 중·미 친목 모임인 '100인 위원회'의 홍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역시 농촌 재건 작업을 하던 판하오이는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독학해야 했지만 노력 끝에 베이징 외국어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현재 유럽과 아프리카를 누비는 벤처기업가로 활약 중이다.
현재 이들은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각 부문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만큼 실력뿐만 아니라 과단성까지 갖춘 것이 77세대의 특징이다.
대표적 인물인 리커창은 고교 졸업 후 안후이성 농촌에 하방돼 농민 생활을 했다.
문혁이 끝나고 1977년 베이징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이후 성공 가도를 달렸다.
리커창 외에 보시라이 당서기,왕이 외교부 부부장,저우창 후난성 대리성장,샤융 중국 국가보밀국 국장 등이 77세대 정치인들이다.
문화계의 활약은 더 일찍 두드러졌다.
영화 '붉은 수수밭''홍등'의 장이머우,'패왕별희'의 천카이거,'푸른 연'의 톈좡좡 감독 등은 뚜렷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국제 사회에 이름을 알렸다.
77세대는 30여년간 중국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지만 물질주의적 발전 외에 정치적 변화는 거의 이뤄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리시위 광시대 교수는 "(문혁 때는)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가능해졌다"며 "하지만 여전히 고위층 사이에 만연한 부패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문화대혁명(1966~76년)이 끝난 다음 해인 1977년 대학에 입학한 이들 세대가 중국을 이끄는 엘리트 층으로 부상했다고 24일 보도했다.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급부상한 리커창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영화감독 장이머우 등이 대표적인 77세대 인물들.1965년 이후 10여년 만에 치러진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한 최고의 엘리트다.
1977년 실시된 대학 입시에는 13세부터 37세까지 570만명이 몰렸고 이 중 4.7%(27만3000명)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난징에서 중문학 교수로 일하는 한시밍(50)은 "우리는 단지 재능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문혁(文革) 때 베이징 외곽 농촌으로 하방(下放·지식인을 농촌 등 노동 현장으로 내려 보낸 일)돼 돼지 사육장 등에서 일하던 안핑은 당시 19세였다.
그는 "이 같은 생활을 계속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막노동에서 탈출할 기회를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고 회상했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현재 중·미 친목 모임인 '100인 위원회'의 홍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역시 농촌 재건 작업을 하던 판하오이는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독학해야 했지만 노력 끝에 베이징 외국어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현재 유럽과 아프리카를 누비는 벤처기업가로 활약 중이다.
현재 이들은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각 부문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만큼 실력뿐만 아니라 과단성까지 갖춘 것이 77세대의 특징이다.
대표적 인물인 리커창은 고교 졸업 후 안후이성 농촌에 하방돼 농민 생활을 했다.
문혁이 끝나고 1977년 베이징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이후 성공 가도를 달렸다.
리커창 외에 보시라이 당서기,왕이 외교부 부부장,저우창 후난성 대리성장,샤융 중국 국가보밀국 국장 등이 77세대 정치인들이다.
문화계의 활약은 더 일찍 두드러졌다.
영화 '붉은 수수밭''홍등'의 장이머우,'패왕별희'의 천카이거,'푸른 연'의 톈좡좡 감독 등은 뚜렷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국제 사회에 이름을 알렸다.
77세대는 30여년간 중국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지만 물질주의적 발전 외에 정치적 변화는 거의 이뤄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리시위 광시대 교수는 "(문혁 때는)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가능해졌다"며 "하지만 여전히 고위층 사이에 만연한 부패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