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가 신용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월가 금융회사에 자금을 투입함으로써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의 확고한 위상을 다지려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홍콩과의 금융 허브 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하고 프라이빗뱅킹(PB) 및 이슬람 금융 허브 기반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싱가포르는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으로 대규모 손실을 입은 UBS에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을 통해 97억달러(지분율 9%)를 투자키로 했다.

또 투자회사인 테마섹을 통해 메릴린치에 50억달러를 투자키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 중이다.

싱가포르가 글로벌 금융회사에 이처럼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건 이례적이다.

싱가포르는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의 최대주주(지분율 15.3%)가 된 것을 제외하곤 그동안 소액 지분을 투자하는 데 그쳐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대규모 자금을 글로벌 금융회사에 투입하고 있는 것은 필요한 자금을 발빠르게 동원할 수 있다는 확고한 인식을 글로벌 금융시장에 심어주기 위한 포석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즉,어려움을 겪고 있는 글로벌 금융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금융 허브를 노리고 있는 중국과 인도를 미리 견제함은 물론 금융 허브 강자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홍콩을 제치고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홍콩에는 싱가포르보다 많은 헤지펀드가 자리잡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써왔다.

싱가포르는 단순히 금융 허브 자리만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대의 PB 허브가 되는 것도 한 목적이다.

PB 부문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스위스의 UBS에 97억달러를 투자키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싱가포르는 이미 PB 총자산 2500억달러로 스위스에 바짝 근접한 상태다.

UBS를 통해 PB 노하우를 더 받아들여 스위스를 능가하겠다는 계획이 깔려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이슬람 금융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목적이다.

싱가포르는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인접해 있다.

이슬람 금융을 꽃피우기 위한 여건도 괜찮다.

얼마 전에는 싱가포르 최대 은행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 그룹이 중동의 투자자들과 손잡고 이슬람 은행인 이슬라믹 뱅크 오브 아시아(IBA)를 설립키로 했다.

싱가포르의 금융 허브 구상을 이끄는 쌍두마차는 테마섹과 GIC다.

싱가포르는 오래전 국가의 성장 기반을 금융과 교역에 두고 1974년 테마섹을 설립했다.

정부가 주인인 일종의 투자회사다.

출범 당시 2억4300만달러였던 자산은 현재 1640억달러로 증가했다.

최고경영자(CEO)인 호칭은 싱가포르 총리인 리셴룽의 부인이자 리콴유 전 총리의 며느리다.

1981년엔 외환보유액 운용을 목적으로 GIC를 만들었다.

GIC는 현재 1000억달러 이상을 관리하고 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