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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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英 珠 < 사법연수원 교수·부장검사 lyj1@scourt.go.kr >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어렸을 때 읽은 책들을 다시 볼 기회가 많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도 아이들 덕분에 다시 읽었다.
그 여운 탓인지,추운 날 일이 있어 밤늦게 귀가하는 골목길에서 문득 '여기서 벌거벗은 사람을 만나면 구두장이 세몬처럼 외투를 벗어줄 수 있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오래 전 그 책을 읽었을 때는 당연히 외면하지 않고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는데,이제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은 미지근한 어른이 되고 보니 선뜻 외투를 벗어주지 못할 것 같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도 일을 통해 쌓는 경험이 많겠지만,검사에게 사건과 사건기록은 세상을 보는 창(窓)이다.
남편을 잃고 홀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자의 목숨을 거두어 오라는 하느님의 명을 차마 따르지 못해 벌거숭이로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천사 미하일 생각을 하다가 수사기록을 통해 만났던 사람이 떠올랐다.
남편이 있고 아이가 하나뿐이었지만,역시 아이 생각에 어렵게 눈감았을 젊은 엄마다.
그 사람은 여러 해 전 내가 담당한 사건의 피해자였다.
대형트럭 운전기사가 가게에 잠시 물건을 사러 가면서 좁은 언덕길에 차를 비스듬히 세워놓았는데,주차 브레이크를 제대로 채우지 않은 탓에 차가 미끄러져 갓난아기를 업고 그 곳을 지나던 피해자가 차와 담벼락 사이에 끼어 사망한 것이었다.
그런데 수사기록에 피해자의 사망진단서만 첨부돼 있고 아기에 대해선 언급이 없어 의아했다.
그 사건을 조사한 경찰에 알아보니 아기는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믿기 어려워 피해자의 남편에게 재차 확인했는데 아기에게 정말 아무 이상이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무섭게 다가오는 차를 바라보며 오로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자세를 취하고 지탱하면서 숨을 거두었을,숨을 거두면서도 아기만을 걱정했을 피해자가 눈에 선하고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 뒤 가끔 그 아기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소설에서 미하일은 자기 대신 다른 천사가 목숨을 거두어간 여자의 두 아이를 이웃 아주머니가 잘 키운 걸 보고 하느님이 던진 세 번째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답을 깨달아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한해가 또 저물어가니 교통사고 피해자의 아기,그리고 여러 사정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린 생명들이 이웃의 관심과 사랑 속에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새삼 간절해진다.
정작 나 자신은 내 가족에 연연하느라 이웃사랑 실천에 인색하기만 하면서도….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어렸을 때 읽은 책들을 다시 볼 기회가 많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도 아이들 덕분에 다시 읽었다.
그 여운 탓인지,추운 날 일이 있어 밤늦게 귀가하는 골목길에서 문득 '여기서 벌거벗은 사람을 만나면 구두장이 세몬처럼 외투를 벗어줄 수 있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오래 전 그 책을 읽었을 때는 당연히 외면하지 않고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는데,이제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은 미지근한 어른이 되고 보니 선뜻 외투를 벗어주지 못할 것 같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도 일을 통해 쌓는 경험이 많겠지만,검사에게 사건과 사건기록은 세상을 보는 창(窓)이다.
남편을 잃고 홀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자의 목숨을 거두어 오라는 하느님의 명을 차마 따르지 못해 벌거숭이로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천사 미하일 생각을 하다가 수사기록을 통해 만났던 사람이 떠올랐다.
남편이 있고 아이가 하나뿐이었지만,역시 아이 생각에 어렵게 눈감았을 젊은 엄마다.
그 사람은 여러 해 전 내가 담당한 사건의 피해자였다.
대형트럭 운전기사가 가게에 잠시 물건을 사러 가면서 좁은 언덕길에 차를 비스듬히 세워놓았는데,주차 브레이크를 제대로 채우지 않은 탓에 차가 미끄러져 갓난아기를 업고 그 곳을 지나던 피해자가 차와 담벼락 사이에 끼어 사망한 것이었다.
그런데 수사기록에 피해자의 사망진단서만 첨부돼 있고 아기에 대해선 언급이 없어 의아했다.
그 사건을 조사한 경찰에 알아보니 아기는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믿기 어려워 피해자의 남편에게 재차 확인했는데 아기에게 정말 아무 이상이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무섭게 다가오는 차를 바라보며 오로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자세를 취하고 지탱하면서 숨을 거두었을,숨을 거두면서도 아기만을 걱정했을 피해자가 눈에 선하고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 뒤 가끔 그 아기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소설에서 미하일은 자기 대신 다른 천사가 목숨을 거두어간 여자의 두 아이를 이웃 아주머니가 잘 키운 걸 보고 하느님이 던진 세 번째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답을 깨달아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한해가 또 저물어가니 교통사고 피해자의 아기,그리고 여러 사정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린 생명들이 이웃의 관심과 사랑 속에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새삼 간절해진다.
정작 나 자신은 내 가족에 연연하느라 이웃사랑 실천에 인색하기만 하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