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가 불황이라는 요즘 '식객'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음식영화답게 정말 군침 당기게 하는 갖가지 음식이 나왔다.

처음부터 황복회를 등장시켜 눈길을 끌더니 꿩완자전골 구절판 도미면 등 갖가지 명품 음식으로 눈요기를 시켜줬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그런 명품 음식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숯가마에서 삽 위에 삼겹살을 굽던 장면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고,벌건 육개장 또한 침샘을 자극했다.

하지만 극장을 나와 먹은 음식은 라면이었다.

'식객'에도 등장하지만 군대 시절 반합에 끓여 먹던 라면은 일품요리에 못지 않았다.

해장을 위해 먹는 매운 라면이나 겨울밤 출출한 속을 달래려 달그락거리며 끓여 먹는 라면은 또 어떤가.

물론 '식객'에서 말하듯 배고플 때 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

쉽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은 밥 다음으로 우리가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 아닐까 싶다.

이렇다 보니 영화 속에서 라면을 먹는 장면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공의 적2'에서 상부의 압력으로 비리를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던 강철중(설경구)이 부장검사 아파트에 찾아와 라면이 눌러붙은 양철냄비를 박박 긁으며 억울해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라면은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는 검사와 어울리며 등장한다.

올해 개봉한 '우아한 세계'에서도 기러기 아빠의 참담한 심정을 라면으로 표현한다.

마지막 장면에 가족을 떠나보낸 강인구(송강호)가 라면을 먹으며 가족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보면서 오열하다 라면을 집어 던진다.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 라면 국물 치우려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집어 던진 음식이 라면이기에 기러기 아빠의 외로움은 극대화됐다.

'파송송 계란탁'에서 라면은 아버지(임창정)와 아들(이인성)의 정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특히 "파송송~ 계란탁~"을 흥얼거리며 라면을 끓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또 있다.

'위대한 유산'에서 백수인 미영(김선아)이 만화가게에서 뜨거운 컵라면을 먹다가 단무지로 열기를 식히는 장면은 코믹한 동시에 백수의 비애가 듬뿍 묻어난다.

'봄날은 간다'에서 라면은 사랑의 시작과 헤어짐의 시작을 알려준다.

은수(이영애)와 상우(유지태)의 사랑은 은수의 "라면 먹고 갈래요"로 시작하고,상우의 "내가 라면으로 보이니"로 헤어짐을 암시한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라면은 각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담으며 표현된다.

그런데 만일 영화 속에서 라면이 아니라 스파게티였다면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었을까.

라면은 1963년부터 지금까지 서민들의 삶과 함께 해왔다.

그러니 라면 먹는 장면만 나와도 마음이 짠해지는 것이다.

디지털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