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성품과 논리 정연한 사고에 결단력까지 갖췄다는 평을 듣는 언론인 출신의 4선 중진의원.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1978년 강영훈 당시 외교안보연구원장의 눈에 띄어 외교안보연구원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대통령 정무비서관 등 공직을 거쳤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공천(부산 영도)을 받아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단 뒤 한 번의 낙선도 없이 4선 경력을 쌓았다.

주로 정보통신 관련 상임위에서 활약,국회 내 대표적인 '정보과학통'으로 꼽힌다.

최병렬 대표가 선출된 2003년 6월 대표 경선에서 6명의 후보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지만 2004년 3월 탄핵 후폭풍 속에서 사무총장을 맡아 주요 당직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2006년 7월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경쟁자인 김무성 의원을 67 대 50으로 누르고 원내대표에 올랐다.

원내대표 시절 사학법 재개정안,로스쿨법,국민연금법 등 쟁점 법안을 둘러싼 대여 협상.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당내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원내대표를 다시 뽑는 게 부담스럽다는 당 최고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임기를 한 달 반가량 연장받아 원내대표직을 410일간 수행한 진기록을 남겼다.

대선 때는 중앙선대위의 싱크탱크 격인 일류국가비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명박 당선자의 대선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네거티브 일색이던 선거전에서 다른 후보 진영을 압도하는 꾸준한 공약 개발로 차별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인 지인경씨(53)와 2녀.

△부산(60) △서울대 외교학과 △동아일보 기자 △대통령 정무비서관 △신한국당 기조위원장 △국회 과기정위원장 △사무총장 △인재영입위원장 △14,15,16,17대 의원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