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 5개년계획만큼 아직도 우리에게 익숙하게 들리는 계획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1960년대,1970년대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의 역사였다.

그 당시 5개년계획은 단발성이 아니었다.

1차,2차 등 차수 개념이 도입된 사실상 장기계획에 가까웠다.

한 정권의 장기집권 때문에 물론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정치적 관점을 떠나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적어도 정책의 일관성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고,그 성과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그 후로 나온 5개년계획들은 말 그대로 5년 이상을 못 보는 계획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도 그러했고,문민정부의 신경제5계년 계획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 정부에서의 계획도 5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참여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비슷한 정권이 들어서도 다를 게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참여정부는 '비전 2030' 장기계획도 내놓지 않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계획이라기보다는 참여정부 5년 계획에 곱하기 4~5를 한 것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지난 몇 십년간 5년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계획들만을 양산해 온 셈이다.

최근 우리 경제의 장기적 성장동력에 대한 우려가 많이 나오는 것도 이런 한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차기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주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금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지만 돌이켜 보면 정권이 달라질 때마다 그랬다.

당장 바꿔야 할 것이 있으면 바꿔야 한다.

하지만 5년은 모든 걸 바꾸기에는,또 그 성과를 국민들이 체감하기에는 너무나 짧다.

그런 점에서 새 정권도 5년이라는 한계에 직면해 있긴 매 한가지다.

이 때문에 우선순위를 가리라는 주문이 많이 나온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또 있다.

5년이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장기적 미래에 대한 대응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우리 사회가 일관되게 공유할 수 있는 비전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은 대통령의 힘만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정권에 따른 변화가 마치 항공모함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한다.

쪽배처럼 이리 갔다,저리 갔다 하는 게 아니라 공화당 대통령이 들어서건,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하건 기본적으로 공유하는 확고한 공통분모가 있다는 얘기다.

자유 시장경제,민주주의,교육과 과학기술,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기까지는 발달된 정당제도,의회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 많다.

핀란드는 우리보다 먼저 경제위기를 겪었다.

그 후로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가의 위기 대응이나 장기 미래비전 추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것이 없도록 해 놨다.

예컨대 의회가 미래위원회를 상설로 만들어 행정부의 국가 미래비전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그 좋은 사례다.

결국 5년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면 정치도 함께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것은 한국개발연구원의 사회적 자본 실태조사에서 가장 낙후된 부문,국민들의 신뢰도가 제일 낮은 것으로 지목된 국회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정치가 진화할 차례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