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말이다.

돌아보면 즐겁고 보람된 일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런데도 가슴 속엔 회한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연초 작정한 일 못한 건 답답하고 작은 욕심에 얽매여 허덕인 것,가까운 이들조차 좀 더 따뜻하게 살피지 못한 건 부끄럽다.

문득 R 프로스트의 시'한아름 가득'이 떠오른다.

'꾸러미를 한데 들고 가려 몸을 웅크려 끌어안지만/몇 놈이 내 팔과 무릎을 기어이 벗어나고/온 꾸러미가 휩쓸려 떨어져버리네./병이며 빵이며 한번에 안아들기란 너무 힘들어./그러나 어느 것도 놓고 싶지 않네./손 안에 머리 속에,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들이/하나도 떨어지지 않게.'

시(詩)는 이렇게 이어진다.

'내 품 안의 꾸러미들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나는 최선을 다할 거라네./떨어지려는 녀석들을 추스리려 웅크리니/ 결국엔 꾸러미들 한가운데 주저앉고 말아./한아름 가득 안고 가려던 꾸러미들을/길가에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네./하지만 나는 더 잘 안고 가려고/그것들을 다시 차곡차곡 쌓으려 애를 쓰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월셋집에 살면서도 불우 청소년 등을 위해 10년 동안 40억원이나 기부했다는 가수 김장훈씨에 따르면 나눔이야말로 삶의 기쁨과 행복을 더하는 일이라는데 '언젠가는'하며 미뤄둔 게 영락없이 품 안의 꾸러미들을 잔뜩 움켜쥐고 있는 형상이다.

11월 제19회 아산상 사회봉사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 5000만원까지 몽땅 내놓은 김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기부 이유는 단순하다.

"행복하니까"가 그것이다.

자신의 도움으로 누군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건 신나고,돈을 쌓아놓는 건 사람을 정체시키고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쓰고 남는 돈을 기부하는 게 아니라 기부할 금액을 미리 정해놓고 그것과 공연비용을 뺀 나머지로 생활한다는 얘기엔 그저 숙연해질 따름이다.

새해엔 모쪼록 '나중에''조금만 더 있다' 하지 말고 그때그때 작은 것이나마 나누고 그럼으로써 보다 평화롭고 풍성한 한 해를 보내게 되기를 빌어본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