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초기부터 조선 궁궐의 수많은 건물을 철거하고 파괴했다.

1915년 대규모 박람회를 개최한다며 경복궁의 수백 채 건물을 헐었고,근정전 앞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다.

명성황후 시해 현장인 건청궁에는 총독부 박물관을 세웠다.

이처럼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의 조선시대 궁궐 모습이 담긴 미공개 유리건판 사진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 궁궐의 옛 모습을 담은 유리건판 사진 500여점을 선보이는 '궁(宮)-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궁궐사진전' 개막(28일)에 앞서 27일 유리건판들을 언론에 공개했다.

유리건판은 잘 닦은 유리판에 감광제를 발라 말린 것으로 필름이 발명되기 전까지 사용된 사진 원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1909~1945년 촬영한 미공개 유리건판 3만8000여장을 소장하고 있으며 궁궐 관련 사진 800여점 가운데 500여점을 이번에 선보인다.

이날 공개된 사진 중에는 일제에 의해 훼손ㆍ왜곡되기 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조선총독부 청사 착공 직후에 찍은 광화문 사진은 1927년 건춘문 동쪽으로 이건되기 전 월대를 포함한 광화문 전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또 보물 제809호인 경복궁 자경전 꽃담의 꽃문양은 현재의 8개가 아니라 9개임을 알 수 있고,창덕궁에 있는 보물 제845호 앙부일구(해시계)는 다리를 포함한 몸체가 받침돌 위에 노출돼 있으나 유리건판 사진에는 둥글게 판 돌확 속에 앉혀져 있다.

최근 복원돼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인 자격루와 달리 청동으로 만든 파수호 하나,수수호 둘,수수통 둘만 남아있는 자격루,임금이 앉는 용상 뒤편에 펼쳤던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에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금속판이 부착된 사실도 새로 확인됐다.

또 1935년 건청궁 터에 총독부박물관을 짓기 위해 지진제(地鎭祭)를 지내는 모습,1926년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迎秋門) 붕괴 사고 장면,1922년 이왕세자(영친왕)의 고국방문 모습,경복궁 동쪽 궁성과 건춘문,동십자각 일대 전경 등도 사진에 담겨 있다.

내년 2월10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유리건판 실물과 카메라 등 관련 자료 20여점,상량문ㆍ현판 등 궁중 관련 유물들도 소개된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이번에 공개되는 500여장의 궁궐사진들은 일제가 대부분의 전각들을 철거한 데다 해방 후 궁궐 주변 구도심을 개발하면서 도시 속 섬처럼 고립된 궁궐의 역사적 고증을 위해 가장 정확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