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의 '첫 만남'을 하루 앞둔 27일 주요 그룹들은 내년도 투자 확대 방안을 찾기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이 당선자가 28일 전경련 회장단과의 오찬 회동에서 "주요 기업들이 갖고 있는 20조∼30조원의 투자 여력을 내년에 실제 투자로 연결시켜 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당장 뚜렷한 투자처를 찾아내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당선자의 '러브콜'에 화답해야 한다는 게 재계의 판단이다.그동안 꾸준히 주장해온 '규제완화와 투자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당선자도 뜻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이 당선자의 약속대로 기업을 옥죄고 있는 각종 규제 완화와 고비용 구조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당장 수도권 규제만 풀면 그동안 묶여 있던 54조원(경기도 조사)이 투자로 이어질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도 마찬가지.올 상반기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대기업들의 출자여력이 다소 늘어났지만,사전규제인 출총제가 완전히 사라지면 그룹들의 투자 패턴이 더욱 창조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이승철 전경련 전무는 "투자 환경만 좋아진다면 해외보다는 국내에 투자하고 싶은 것이 기업들의 솔직한 심정"이라며 "규제가 사라지면 일본처럼 해외로 빠져나갔던 설비투자가 국내로 U턴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말했다.

각 그룹별로는 사실 '시원한' 투자확대 계획을 내놓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고질적인 고비용구조와 각종 규제로 수년째 투자에 소극적이던 기업들이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투자계획을 늘린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투자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고 신규 사업이나 설비 증설 아이디어가 조심스럽게 흘러 나오고 있다.머릿속에 머물고 있던 각종 투자 계획들이 빛을 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신규 투자의 사전 단계인 R&D(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SK그룹의 경우 내년도 총 투자금액인 8조원 중 약 20%인 1조5000억원을 투입,국내외에 연구소를 대거 늘릴 방침이다.이를 통해 해외자원개발,친환경에너지,새로운 개념의 통신 서비스 등 새로운 투자처를 최대한 많이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경우 내년부터 본격화되는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건설 계획을 앞당기거나 확대하는 방식으로 당선자의 일자리 창출 노력에 화답한다는 계획이다.이에 따라 내년도 전체 투자규모가 당초 예상(매출액의 5%인 5조원)보다 많은 7조∼8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LG그룹은 올해 실적이 개선된 LG전자 LG필립스LCD LG화학 등 주력 3개사를 중심으로 투자를 10% 정도 늘릴 계획.특히 LG는 이 당선자의 당선을 계기로 태양광발전 등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신규사업 투자에 더욱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롯데그룹도 고용창출 효과가 큰 유통 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될 것으로 보고 아직 국내에 들여오지 못한 새로운 업태의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전망이다.

삼성그룹은 비자금 의혹에 대한 특검수사로 차질이 빚어지고는 있지만 내년에 25조원에 달하는 설비 및 R&D 투자를 계획해 놓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올해 신수종사업 태스크포스(TF)도 구성하고,전방위적인 경영진단을 통해 공격투자를 위한 대형을 짜놓았다"며 "당선자의 공약이 실천으로 옮겨져 특정 대기업들을 겨냥한 정책 규제들이 완화된다면 투자 계획은 날개를 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각 그룹들이 이 당선자의 친기업적 성향이나 그동안의 공약을 보고 투자 확대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면서도 "정부가 금액을 정해놓고 마치 기업들의 투자를 조정하거나 강요하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환경만 조성되면 투자는 당연히 늘어나게 마련이라는 설명이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