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디자이너] 이상봉 패션 디자이너 '디자인엔 모험과 용기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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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프리뷰인 상하이 오프닝 쇼,KT&G 이상봉 에디션 론칭 기념 모스크바 패션쇼,환경재단 소나무 패션쇼….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씨는 올해 국내외를 넘나들면서 여섯 번의 패션쇼를 선보이며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보통 1년에 네 번 정도 패션쇼를 치러왔던 그는 올해 두 달에 한 번꼴로 새로운 의상들을 무대에 올리는 열정을 보였다.
많은 사람이 '이상봉' 하면 광채 나는 헤어 스타일,턱수염,동그란 검은 뿔테 안경을 떠올릴 정도로 이씨는 연예인만큼이나 유명한 스타 디자이너다.
특히 2005년 한글을 입힌 패션을 파리 무대에 소개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제는 패션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기업과 건설.다이어리.그릇.담배.휴대폰 등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라이프 스타일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출시된 'LG 샤인폰 이상봉 에디션'을 시작으로 올해 행남자기의 그릇과 프랭클린 다이어리 커버에 그의 디자인을 입혔고,금호건설의 아파트 벽지와 문에서도 그의 디자인 감각을 엿볼 수 있게 됐다.
또 그의 이름을 내건 라이선스 란제리 브랜드 '본디엘'과 침구 브랜드 '이상봉 메종'도 출시됐다.
그는 "이제 패션이라는 하나의 영역에 갖혀 있기보다 라이프 스타일을 디자인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서울예술대 방송연예과를 졸업,1983년 중앙 디자인 콘테스트에 입상하면서 패션계에 입문했다.
28년째 국내 패션계를 이끌어 온 베테랑 디자이너지만 해외 무대에서는 아직도 신인 디자이너처럼 도전정신이 가득하다.
1997년 파리 전시회 출품를 통해 해외 무대에 처음으로 '이상봉'이라는 이름을 알렸고,벌써 올해로 11년째를 맞았다.
또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은 2002년부터 12번째 참가하고 있다.
그는 "대박보다는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의 무대를 꿈꾸며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해 온 게 지금까지 패션 디자이너로서 생명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상봉의 옷은 파리,모스크바를 비롯 세계 20개 도시의 매장에서 팔리고 있다.
특히 그의 한글 디자인 의상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각광을 받는다.
여성 정장 한벌에 200만~300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하이클래스 사람들이 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에게 이상봉의 의상이 눈에 띄었던 이유는 프레타포르테(고급 기성복) 스타일과 오트 쿠튀르(고급 주문복) 스타일의 중간 스타일을 제시했기 때문.그는 "흔히 볼 수 있는 비슷한 스타일을 소개했다면 누구도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사 입지 않았을 것"이라며 "동양의 정서가 담긴 나만의 스타일로 '이상봉 마니아'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중동지역은 한 바이어가 1년에 3만~4만달러어치를 5년째 구매해 갈 정도로 그의 의상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고.
이씨의 디자인 철학은 '자유'에서 출발한다.
그때그때마다 하고 싶은 것을 디자인하지 특별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최근 2~3년 한글.소나무.가구 등 동양적인 감성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디자인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이상봉 스타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단지 우리의 문화를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도록 옷으로 표현해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글 다음으로 최근 그가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분야는 한복.어떻게 하면 한복의 모티브를 적절히 응용해 세계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다.
이씨에게 여행은 창작 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늘 바쁜 일정으로 계획만 잔뜩 세워두고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그는 "티베트 여행은 벌써 5년째 계획만 하고 있다"며 "더 이상 첨단문명으로 오염되기 전에 그곳의 문화를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은 모험이요,용기"라고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했다.
아무리 머릿속에 좋은 디자인을 담고 있어도 모험의식과 용기를 발휘해 현실로 풀어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10년 넘게 해외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패션쇼를 하고 있지만 쉽게 지나쳐 버렸던 작은 것을 재해석해 낸 다른 디자이너의 옷을 볼 때마다 부족함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주변에서는 이미 많은 성과를 이룬 디자이너로 바라보지만 그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 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단다.
대중이 입을 수 있는 남성복 브랜드와 액세서리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그의 남은 목표다.
그리고 나서 그의 이름을 단 향수를 내는 게 디자이너 이상봉으로서 이루고 싶은 마지막 바람이라고.
글=안상미 기자/사진=강은구 기자 saramin@hankyung.com
보통 1년에 네 번 정도 패션쇼를 치러왔던 그는 올해 두 달에 한 번꼴로 새로운 의상들을 무대에 올리는 열정을 보였다.
많은 사람이 '이상봉' 하면 광채 나는 헤어 스타일,턱수염,동그란 검은 뿔테 안경을 떠올릴 정도로 이씨는 연예인만큼이나 유명한 스타 디자이너다.
특히 2005년 한글을 입힌 패션을 파리 무대에 소개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제는 패션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기업과 건설.다이어리.그릇.담배.휴대폰 등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라이프 스타일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출시된 'LG 샤인폰 이상봉 에디션'을 시작으로 올해 행남자기의 그릇과 프랭클린 다이어리 커버에 그의 디자인을 입혔고,금호건설의 아파트 벽지와 문에서도 그의 디자인 감각을 엿볼 수 있게 됐다.
또 그의 이름을 내건 라이선스 란제리 브랜드 '본디엘'과 침구 브랜드 '이상봉 메종'도 출시됐다.
그는 "이제 패션이라는 하나의 영역에 갖혀 있기보다 라이프 스타일을 디자인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서울예술대 방송연예과를 졸업,1983년 중앙 디자인 콘테스트에 입상하면서 패션계에 입문했다.
28년째 국내 패션계를 이끌어 온 베테랑 디자이너지만 해외 무대에서는 아직도 신인 디자이너처럼 도전정신이 가득하다.
1997년 파리 전시회 출품를 통해 해외 무대에 처음으로 '이상봉'이라는 이름을 알렸고,벌써 올해로 11년째를 맞았다.
또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은 2002년부터 12번째 참가하고 있다.
그는 "대박보다는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의 무대를 꿈꾸며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해 온 게 지금까지 패션 디자이너로서 생명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상봉의 옷은 파리,모스크바를 비롯 세계 20개 도시의 매장에서 팔리고 있다.
특히 그의 한글 디자인 의상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각광을 받는다.
여성 정장 한벌에 200만~300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하이클래스 사람들이 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에게 이상봉의 의상이 눈에 띄었던 이유는 프레타포르테(고급 기성복) 스타일과 오트 쿠튀르(고급 주문복) 스타일의 중간 스타일을 제시했기 때문.그는 "흔히 볼 수 있는 비슷한 스타일을 소개했다면 누구도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사 입지 않았을 것"이라며 "동양의 정서가 담긴 나만의 스타일로 '이상봉 마니아'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중동지역은 한 바이어가 1년에 3만~4만달러어치를 5년째 구매해 갈 정도로 그의 의상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고.
이씨의 디자인 철학은 '자유'에서 출발한다.
그때그때마다 하고 싶은 것을 디자인하지 특별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최근 2~3년 한글.소나무.가구 등 동양적인 감성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디자인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이상봉 스타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단지 우리의 문화를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도록 옷으로 표현해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글 다음으로 최근 그가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분야는 한복.어떻게 하면 한복의 모티브를 적절히 응용해 세계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다.
이씨에게 여행은 창작 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늘 바쁜 일정으로 계획만 잔뜩 세워두고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그는 "티베트 여행은 벌써 5년째 계획만 하고 있다"며 "더 이상 첨단문명으로 오염되기 전에 그곳의 문화를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은 모험이요,용기"라고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했다.
아무리 머릿속에 좋은 디자인을 담고 있어도 모험의식과 용기를 발휘해 현실로 풀어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10년 넘게 해외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패션쇼를 하고 있지만 쉽게 지나쳐 버렸던 작은 것을 재해석해 낸 다른 디자이너의 옷을 볼 때마다 부족함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주변에서는 이미 많은 성과를 이룬 디자이너로 바라보지만 그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 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단다.
대중이 입을 수 있는 남성복 브랜드와 액세서리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그의 남은 목표다.
그리고 나서 그의 이름을 단 향수를 내는 게 디자이너 이상봉으로서 이루고 싶은 마지막 바람이라고.
글=안상미 기자/사진=강은구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