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외국인들이 부실채권(NPL)을 싹쓸이 할 때 채권과 담보 부동산을 평가해주면서 거액의 수수료를 받았죠.돈은 많이 벌었지만 국내 우량 부동산을 외국인이 헐값에 가져가는 것을 도와주다 보니 환멸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김병권 한국투자신탁운용 부동산투자운용부장은 원래 잘 나가는 감정평가사였다.

30대 초반이던 1990년대에 이미 억대 연봉자였다.

그러나 2000년 이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그는 감정평가사 일을 그만두고 홀연 유학 길에 올랐다.

외국 부동산에 투자하는 '바이 사이드'로 옮겨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2002년 코넬대 부동산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그는 삼성화재 해외부동산투자팀과 국민은행 PF(프로젝트파이낸싱)심사팀을 거쳐 올해 한국투신운용으로 옮겼다.

현재 그는 한 달에 일주일 정도 해외를 오가며 베트남 부동산 펀드 등을 운용하고 있다.

감정평가사에서 해외 부동산투자 전문가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동안 국내 부동산이 높은 수익률을 안겨줬지만 점점 직접투자 매력이 감소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죠.그 대안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가 뜨고 있는 상황인데 일부 이머징 마켓은 누가 봐도 매력적입니다."

선진국 수준으로 들어선 우리나라와 달리 이머징 마켓은 도시 성장률과 인구 성장률이 높아 부동산 가격 상승 여력이 크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특히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를 주목하라고 귀띔했다.

이곳에 들어선 '쌍둥이 타워' 페트로나스타워는 삼성물산이 시공해 국내 주재원들이 많이 나가 있는 데다 날씨가 좋고 한국과 비행기로 6시간 거리에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아파트는 보통 평당 400만원이고 고급은 평당 700만원까지 한다.

말레이시아는 사회주의 국가와는 달리 외국인 소유를 인정해 투자가 용이하고 현지에서 대출도 받을 수 있어 임대 소득으로 대출 이자를 갚아 나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개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해외 부동산 직접투자에 대한 그만의 비결과 원칙은 간단하다.

"외국 부동산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유동성입니다.

팔고 싶을 때 팔 수 없다는 것은 손실을 의미하죠.그래서 해외 부동산에 투자할 때 유심히 봐야 할 것이 한국 기업들의 진출 현황입니다."

이런 맥락으로 베트남 신도시와 중국 칭다오도 눈여겨볼 지역으로 꼽았다.

국내 기업 진출이 활발해 주재원들이 많아 유동성 확보가 쉽고 경제성장이 기대돼 향후 부동산 시장 전망이 밝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갈 때 현지 부동산 가격 동향을 고려하기 때문에 투자 위험도 덜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여서 현지인 명의로 사야 한다는 리스크가 있다고 전했다.

만약 현지인이 계약과 달리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면 가져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은 유난히 부동산 재테크에 대한 환상이 크죠.그동안 부동산으로 떼돈 번 경험 때문인데 정말 사기당하기 쉽습니다."

김 부장은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신뢰할 만한 브로커를 선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내 대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을 브로커로 삼는 게 안전하다는 지적이다.

또 각종 광고로 과도하게 선전하는 곳은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헐값으로 나오고 있는 필리핀 콘도와 골프회원권은 5년 사용권을 마치 평생 회원권처럼 속여 파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사실 일반인들이 해외 부동산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 힘들어 막무가내로 투자했다가는 손실을 보기 십상이죠.주재원이나 자녀 유학,노후 대비 등 주거용으로 매입하려는 사람들이 해외 부동산 투자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주거 목적으로 매입하면 의료시설과 교통 학군 안전 등 종합적인 사항을 고려해 투자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것들이 만족될 때 부동산 유동성도 괜찮을 수밖에 없다.

또 부동산을 사놓고 관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투자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사실 부자들이나 해외 주재원들이 아닌 일반 서민들이 해외 부동산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년부터 해외 부동산 취득 한도가 폐지되는 등 해외 부동산 투자가 쉬워질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서민들이 직접 투자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머리 아픈 직접투자보다 간접투자를 하는 것은 좋은 대안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해외 부동산 펀드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죠.최근 다양한 펀드가 나오고 있는데 특히 이머징 마켓에 투자하는 펀드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5년에서 7년 정도 장기 투자한다면 연 15%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국내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도 간단한 답을 내놨다.

"새 정부에 대한 부동산 가격 기대심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죠.과거 10년간의 부동산 수요 억제 정책에서 이젠 공급 확대로 정책이 바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과거처럼 국내 부동산으로 대박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제 눈을 해외로 돌려야죠." 김 부장은 원금 6000만원으로 최근 10년 동안 분당과 평촌 등지의 아파트를 다섯 번 정도 사고 팔아 현재 시가 15억원 상당의 대치동 아파트를 마련한 '고수'이기도 하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