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허바드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50)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감세 정책을 입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내면서 감세 정책의 골격을 잡았다.

그런 만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경제 살리기 일환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감세 정책에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감세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사회적인 부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허바드 원장을 지난해 12월 28일 컬럼비아대 유리스홀 원장실에서 만나 새해 경제에 대해 들어 봤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올 성장률이 1.5~2%를 기록하겠지만 침체에 빠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죠.지금 고용 사정은 괜찮습니다.

수출 활황 덕분에 경제 활동도 일부는 아주 강한 편이고요.

소비도 아직은 견조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성장률은 올 1분기부터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이 장기화되면서 고용과 소비도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서브프라임 파문은 세 가지 경로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택건설 부진으로 GDP(국내총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두 번째는 집값 하락으로 '역(逆) 부의 효과(reverse wealth effect)'가 나타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소비에 영향을 주게 될 겁니다.

세 번째는 신용 경색입니다.

우량 기업들의 기업어음(CP)마저 소화가 안 될 정도면 상당히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출 창구도 빡빡해져 개인에 대한 타격이 상당합니다.

만일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다름아닌 신용 경색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입니다."

-일부에서는 신용 경색을 해소하고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선 재정 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일시적인 세금 감면이 필요하다고 밝혔는데요.

"세금 감면 등 재정 정책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점입니다.

감세 정책으로 세금을 깎아 주면 기업들의 부담이 줄어들고 그러다 보면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정 정책은 통화 정책과 달리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통화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당장 1월30일 열리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기준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편인데요.

"FRB가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크게 내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FRB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죠.물론 FRB 내에서 인플레이션보다 경기 둔화가 문제라는 인식이 퍼질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FRB가 그만큼 비관주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상당합니다만.

"그런 우려가 있긴 합니다.

특히 근원 물가상승률이 FRB의 목표를 벗어나고 있어 상당한 위험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성장률마저 둔화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이 없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은 편입니다."

-새해 세계 경제로 화제를 돌려 보겠습니다.

새해 세계 경제의 주된 관심은 무엇이 될 것으로 보입니까.

"아무래도 글로벌 경제의 둔화와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여부가 최대 관심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에 이머징 마켓의 버블 붕괴 여부와 고유가 등도 주목을 끌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디커플링이 발생한다고 해도 미국 경제가 좋지 않으면 글로벌 경제도 좋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아직도 미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합니다.

영향받을 수밖에 없죠.최근 유럽이나 일본 경제가 좋지 않은 조짐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디커플링론은 아직 시기상조로 보입니다."

-서브프라임 파문으로 미국이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시대가 끝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부상과 대조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중국은 이미 글로벌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위상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고요.

반면 미국의 힘은 전에 비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미국에도 여전히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중국 등 이머징 마켓은 여전히 미국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미국이 기침하면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여전히 유용할 정도죠.그런 만큼 당분간 미국의 영향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이 영향력을 빠르게 넓혀 갈 것으로 보입니다."

-달러화 가치가 2년 연속 크게 하락했는데요.

새해는 어떻게 보십니까.

"새해엔 오를 것 같습니다.

FRB가 무리하게 금리를 내리지 않는 한 추가 하락 가능성은 낮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외국이 달러화 자산을 쉽게 줄이지 못할 겁니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경제를 탄탄히 하기 위해 한층 신경 써야 할 부분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단기적으론 자본투자 활성화가 필요합니다.

장기적으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고요.

미국 경제의 단기적 최대 리스크는 자본투자 저조입니다.

투자가 안 되면 경제가 커갈 수 없습니다.

생산성 향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성장 동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 경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한국 경제의 발전이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라는 얘기는 굳이 더 하지 않겠습니다.

세계 경제의 지도국으로 우뚝 섰으며 아젠다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새해 세계 경제가 좋지 않으면 한국 경제도 영향받겠지만 성장 가능성은 한층 크다고 봅니다.

특히 친기업적인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까지 선출됐으니 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 대통령'을 모토로 내걸었습니다.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마디로 개혁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금융시장과 노동시장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야 합니다.

특히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생산성 향상은 먹고 사는 파이를 키우는 것인 만큼 이를 위해 어떤 시스템이 중요한지를 숙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울러 토론을 길게 하기보다는 일단 결론을 내렸으면 확실하게 추진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세금 감면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세정책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은 일입니다.

세금을 줄이면 투자 재원이 늘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의 투자가 늘고 자연스럽게 일자리도 많아집니다.

일자리 창출은 경제 활성화로 이어져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기반도 확대됩니다.

따라서 새 정부가 감세 정책을 취하는 건 바람직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금 중에서도 법인세와 배당소득세를 줄이는 것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감세 정책은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란 주장도 상당합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면 양극화가 해소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상 세금을 내는 사람과 세금으로 인한 부담을 느끼는 주체는 다릅니다.

예를 들면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에 부담이 갈 것으로 생각하나 사실상 노동자들에게 더 부담이 돌아가는 겁니다.

따라서 세금 정책은 효율성과 형평성 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장을 맡고 있는 자본시장 규제위원회(CCMR)에서 사베인스 옥슬리법(회계감독규정 강화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는데요.

"사베인스 옥슬리법은 꼭 필요한 법입니다.

기업 투명성을 강화해 자본 시장을 건강하게 만드니까요.

다만 규제가 너무 까다로워져 기업들에 부담을 주는 건 사실입니다.

이를 적절한 수준에서 완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신중히 검토해서 결정할 사항입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의 후임자로 거론되기도 했었는데요.

벤 버냉키 의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개방된 경제학자답게 민주적이며 논리적으로 통화 정책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서브프라임 파문에서 유럽중앙은행(ECB) 등과 공조를 취하는 것을 봤듯이 시장의 흐름을 읽는 감각과 대응 능력도 아주 뛰어납니다."

하영춘 뉴욕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