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戊子年) 쥐띠 해가 밝았다.

풍속에는 새해 첫날을 '삼가는 날'이라고 했다.

한자로 '신일(愼日)'이라고 썼다.

얇은 살얼음판을 밟아 가듯 몸과 마음이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뜻이다.

새해를 맞아 사람마다 기대와 각오가 새롭다.

해맞이 명소에는 수백만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안팎으로 작은 변화를 준비한다.

새해 새날에는 사람마다 세심(洗心)을 하니 세상은 삶의 생기가 가득하다.

김종길 시인의 시 '설날 아침에'는 새해 벽두에 읽으면 더욱 좋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파릇한 미나리 싹이/봄날을 꿈꾸듯//새해는 참고/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오늘 아침/따뜻한 한 잔 술과/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그것만으로도 푸지고/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중략)세상은/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지만/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중략)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한 해가 가고/또 올지라도//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고운 이빨을 보듯//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새해에는 우리의 인심이 슬픔과 낙담을 벗어나기를 소망한다.

다가올 일에 너무 많은 걱정을 하거나 지난 일에 대한 후회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은 말라 죽는 갈대와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어김없이 많은 곡절(曲折)이 우리를 찾아오겠지만,새로운 날들에 대한 긍정과 환희를 잃지 않고,연민과 친절을 베풀 때 이 세상은 하나의 큰 충만이 될 것이다.

새해 첫날은 자기를 스스로 돌아보는 유심(幽深)한 명상으로 맞을 일이다.

목수가 들보를 꼿꼿하게 깎듯이 화살을 쏘는 궁사가 화살의 균형을 잡듯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결곡하게 단속해야 한다.

마음의 씀씀이와 관련해 '객진(客塵)'이라는 말이 있다.

'객진번뇌'라는 말은 익히 알려져 있다.

객(客)은 여관을 찾는 손님을 뜻한다.

진(塵)은 문틈으로 햇빛이 들어올 때 허공에서 요동치는 작은 먼지 알갱이를 뜻한다.

객과 진은 머물지 않고 왔다 갔다하는 현상계를 상징한다.

현상계는 생멸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손님이 찾아오는 여관은 항상 일정하게 머무르는 것이다.

허공 또한 먼지 알갱이가 아무리 요동치더라도 항상 그곳에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객진의 처지가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손님과 먼지 알갱이처럼 동요하는 마음이기보다는 여관과 허공처럼 동요 없는 마음이기를 바란다.

오늘 새해 아침에는 '희희호호(熙熙白白大十 白白大十 ) '를 또한 생각한다.

다산(茶山)은 '희희'를 환하고 밝다는 뜻으로,'호호'를 하얗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희희호호'한 세상은 '밤이 낮과 같은 세상(夜如晝之世)'이라고 했다.

거짓과 부정이 용납되지 않는 세상,대접이 공평한 세상,겉마음 속마음이 따로 없는 세상,말과 생각이 다르지 않는 세상,처음과 끝이 공개되는 세상,눈꼽만큼도 숨김이 없이 당당한 세상,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과 주고 받는 물건이 청정한 세상이 희희호호한 세상이다.

명백(明白)한 세상이 희희호호한 세상이다.

명백하면 모든 시시비비를 떠나게 된다.

명백하면 백비(百非)를 떠나 신뢰를 쌓는다.

모든 일의 으뜸은 인심을 얻는 것이다.

인심이 돌아서지 않으면 합심(合心)을 얻는다.

합심을 얻으면 화평(和平)을 얻는다.

무자년 한 해는 희희호호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불교의 가르침에는 '순경계를 조심하라'는 말씀이 있다.

마음에 부합하는 것이 '순(順)'이요,거슬리는 것을 '역(逆)'이라 했다.

인심은 대개 음해와 질책의 대상이 되는 역경계는 잘 견디고 극복한다고 한다.

실로 무서운 것은 순경계이다.

칭찬과 기대와 갈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순경계인데,이때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새해 첫날의 진정한 세심(洗心)은 초심(初心)을 세우는 일임과 동시에 그 초심이 순경계를 만나더라도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까지를 세우는 일이다.

새해 첫날의 세심이 어렵고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