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업분야의 전환 ③ 빅사이언스를 상업화하라

기술을 그냥 안팔고 '연구소기업' 만들어 상장시켜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있는 레이븐스우드 애비뉴. 미 육군부대의 막사로 쓰였던 이 곳에는 1970년 1월 스탠퍼드대학에서 분리된 SRI인터내셔널이 자리잡고 있다.

미 국방성 연구 프로젝트가 많아 출입통제가 엄격한 이 곳은 분사(spin-offㆍ스핀오프) 방식으로 군사기술을 상용화해 성공한 곳이다.

새로운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기술을 상용화해 새로운 가치를 만든 대표적인 케이스다.

음성인식기술을 상용화한 누앙스,로봇을 이용한 원격수술시스템으로 성공을 거둔 인투이티브시스템 등은 SRI인터내셔널이 스핀오프를 통해 키운 기업으로 나스닥에 상장까지 됐다.

이 곳에서 만난 SRI인터내셔널 컨설팅의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담당인 박철호 부사장은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누앙스 등을 나스닥에 상장시켜 연구소가 번 돈이 1946년 연구소 창립 이후 50여년간 번 돈보다 많았다"면서 "관련 기술을 상용화한 연구원 중 백만장자 수 십명이 탄생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SRI가 스핀오프 방식으로 '연구소기업'을 키운 것은 1998년부터.1990년대 초 연구소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국방분야 프로젝트가 소련의 붕괴 등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위기 타개책으로 나온 내부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남들보다 연구도 많이하고 발명도 많이 했는데 왜 위기를 맞고 있는가"에 대한 해법으로 "기술을 그냥 팔 것이 아니라 연구소기업을 만들어 상용화 초기단계까지 키운 뒤 매각하자"는 합의가 이뤄진 것.

가치창출 효과는 엄청났다.

박 부사장은 "해군 전투함끼리 교신하기 위해 개발한 음성인식기술을 콜센터에 상용화한 누앙스의 경우 18달러였던 주가가 160달러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SRI인터내셔널이 베트남전 때 전방의 총상 환자를 수술하기 위해 개발했던 원격수술시스템은 사장됐던 기술이었지만 인투이티브시스템이 상용화하자 곧바로 대박을 터뜨렸다.

SRI인터내셔널의 성공에는 몇 가지 원동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축적해온 데다 자체적으로 상용화를 위한 컨설팅 기능을 갖춘 것이 주효했다.

실리콘밸리에 벤처캐피털 등이 많아 인큐베이팅이나 스핀오프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는 점도 성공 요인이다.

기술상용화를 위한 아이디어와 프로젝트 진행 및 평가 등 각 단계에 N(Needㆍ수요) A(Approachㆍ접근방법) B(Benefitsㆍ소비자의 혜택) C(Competitionㆍ국제경쟁력) 등 SRI인터내셔널만의 독특한 사업진행 방식을 적용한 점도 성공의 배경으로 꼽힌다.

박 부사장은 "기술상용화의 가장 큰 핵심은 차별화된 기술력과 그 기술이 꼭 필요한 제품이 무엇이냐를 발굴해 내는 것"이라면서 "한국에서 삼성이나 LG도 스핀오프 방식으로 연구소기업을 키우고 차차세대를 위한 다양한 연구개발이 이뤄져야 하며 정부도 관련 규제를 유연하게 풀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멘로파크(미 캘리포니아주)=최명수 기자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