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趙東根 명지대 사회과학대학장ㆍ경제학 >

개인이든 국가든 성공에 도취하지 않고 실패에서 배울 때 발전하게 된다.

성공을 흉내 내기는 어렵지만 실패에서 배우기는 쉽다.

'실패학'은 유용한 정보의 보고(寶庫)이다.

2008년 12월19일이면 이명박 정부가 탄생한 지 1년이 된다.

1년 후 천심(天心)인 '민심'을 얻으려면 참여정부의 실패를 철두철미하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2003년 12월19일에 열린 대선승리 1주년 자축 모임인 '리멤버 1219'에서 예고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리는 승리했으나 대통령 선거는 끝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들은 승복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저를 흔들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우리' 그리고 비(非)지지자들을 '그들'로 구분하고 자신의 승리를 '시민혁명'으로까지 평가했다.

당선되고 나서 1년이 지나도록 승리에 취해 있었다.

2003년의 경제성장률은 3.2%로 전년도 성장률 6.9%의 반토막에도 못 미쳤다.

서민의 삶의 무게가 가중됐지만 민생(民生)에는 무심했다.

노 대통령의 오만은 대통령 취임사에 극명하게 나타났다.

우리의 현대사(史)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로 폄훼했다.

'새로운 도덕률'로 특권과 반칙으로 굴절된 대한민국을 바로잡겠다는 것이었을까? 참여정부의 현란한 '수사(修辭)'와 좌편향의 아마추어리즘은 태생적이었다.

참여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난쟁이' 어깨에 걸터앉은 '거인'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5년은 건국 이래 60성상(星霜)을 겪은 '거인'의 어깨에 앉은 '난쟁이'였다.

참여정부는 '선출된 권력'에 대한 확신편향에 빠진 나머지,선거에서의 '승리개념'과 국정에서의 '통치개념'을 구분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승패'의 문제로 접근했다.

언론은 기득권 세력의 앞잡이라 이기려 했고,일류는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는 이유로 이기려 했으며,시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이기려 했다.

민심은 그렇게 참여정부로부터 멀어져 갔다.

정동영 후보는 대선패배 인정 연설에서,"진실의 편에 서서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은 진실의 편에 서지 않은 것이 된다.

자신을 지지한 사람들이 소수였다면 결국 진실의 편에 서지 않은 많은 거짓 사람들의 대통령이 되려 했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도덕률'과 '2분법'으로 국민을 질타하는 리더십은 참여정부의 유전자 그 자체이다.

이명박 당선인이 국민들로부터 공감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파'로의 정권교체가 그 답일 수는 없다.

당선인으로부터 '질타하는 리더십'이 아닌 '섬기는 리더십'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말의 성찬'이 아닌 '실천의 진정성'에 국민들이 감동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선거과정에서의 공약을 잊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과감하게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승리한 것은 '747 프로젝트'와 '한반도 대운하' 같은 공약에 국민들이 매료되어서가 아니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변화'를 갈망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성공 여부는 선진화라는 큰 프레임(frame)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견지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큰 방향은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자유주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현실을 개조하고 설계할 수 있다는 '지적오만'은 금물이다.

잘나가는 기업과 사람들의 발목을 잡은 질곡을 타파해 세계를 무대로 신명나게 뛸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취약계층에 요구되는 사회적 배려도 마땅히 부족하지 않아야 한다.

또 다른 '리멤버 1219'가 축제일이 되기 위해서는 내일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겸손한 리더십보다 더 강한 리더십은 없다.

국민보다 더 큰 거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