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 끼니 때우며 '기술 알바' 하던 형제

메모리 없던 초절전 '거북이 MP3'로 대박

"중국에서 1만대로 누구 코에 붙입니까?"지난해 12월31일 오후 서울 구로동 디지털단지 코오롱 디지털타워 14층 비비티 사무실.이 회사 변우영 대표(34)의 얼굴이 갑작스럽게 어두워졌다.

한 중국 업체로부터 MP3플레이어 주문 전화를 받고 나서다.

"1만대 정도는 곧 만들 수 있다"는 변 대표의 설명에 "상하이에만 1차분 50만대가 필요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계약이 확정되면 100% 국산 초저가 MP3플레이어가 초저가의 본산인 중국을 공략하는 기회를 잡는 셈.문제는 생산 능력이다.

이날 하루에만 미국 일본 러시아 시리아 이스라엘 등 6개국에서 2만~50만대 규모의 주문과 상담이 쏟아졌다.

앞서 받아 놓은 모 대기업과 쇼핑몰 물량 5만대를 합치면 총 주문량이 100만대에 달한 상황.출시 한 달도 안돼 이미 생산 능력(1일 3000대)을 초과한 것이다.

변 대표는 "전체 직원이 6명뿐인데 우리 형제 빼고 나머지 직원은 생산 현장에서 철야근무 중"이라며 "생산 아웃소싱 업체를 더 확보해야 하는데 걱정"이라며 행복한 고민을 털어놨다.

이들이 경쟁적으로 찾은 제품은 지난해 12월 중순 내놓은 9900원짜리 세계 최저가 MP3플레이어 '터틀 S9'.일명 '거북이' MP3플레이어다.

기본 기능만 달랑 탑재한 거북이는 "1만원 이하로 가면 구매심리를 되레 죽일 것"이라는 주변의 예상을 뒤엎고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거북이 돌풍의 비결은 '상식'을 깬 군살빼기.메모리카드가 아예 없다.

SD 등의 외부 메모리카드를 '원하는 용량(최고 8GB)'만큼 알아서 다른 데서 구해 쓰도록 한 것이다.

이어폰 목걸이 CD.PC 연결선 등 액세서리도 몽땅 빼버렸다.

"메모리카드나 액세서리는 집마다 남아도는데 또 줄 필요는 없다"는 게 비비티 측의 설명이다.

덕분에 6000원짜리 1GB 메모리카드를 따로 사도 비용이 1만6000원을 넘지 않는다.

아이리버나 애플 등의 유명 제품을 흉내낸 저가 중국산 MP3가 1만5000(256MB)~5만원(1GB)대라는 점에서 차별화에 성공한 셈이다.

독창적 설계 기술도 한 몫 했다.

변 대표의 친형인 변우성 이사(36)는 "회로 설계를 10분의 1로 축약하는 기술과 노이즈 방지 기술을 개발해 저전력 소비 효과와 최고 수준의 음질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반 소형 건전지 한 개로 17시간 재생이 가능하다.

이는 동급 MP3플레이어 중 최장시간 연속 재생 능력이다.

부품 수와 납땜량도 40%가량 줄여 단가를 낮췄다.

쉽게 복사하지 못하도록 '페이크(위장회로)'도 곳곳에 숨겨놨다.

사실 형제의 '인생 로드맵'에는 동업 계획이 없었다.

몇 년간만 돈을 벌겠다며 사업에 나선 케이스다.

부모님 사업이 2002년께 기울면서 대신 빚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연세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동생인 변 대표와 같은 대학 전자공학과 대학원에서 디지털 신호처리를 공부하던 형인 변 이사는 공부를 중단하고 2003년 5월 연대창업보육센터에 입주했다.

"컵라면으로 버티며 아르바이트로 빚을 갚아 나갔다"고 형제는 말했다.

재능은 곧 두각을 나타냈다.

2004년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원재생 솔루션 'GMA'를 국내 첫 개발,특허 취득과 함께 대기업인 KTF에 공급하는 데 성공한 것.튀는 동생의 아이디어와 형의 재능이 잘 맞아 떨어진 첫 번째 작품이었다.

형 우성씨는 대학원 재학 중 박사급이 받는 학회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하는 등 일찌감치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회로설계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날이 계속됐다.

저작권을 무시하는 국내 관행상 '큰 돈'은 벌지 못했다.

이 경험이 초저가 MP3플레이어 '거북이'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비비티는 '거북이'를 이을 차기작 개발도 최근 끝냈다.

1회용 MP3플레이어다.

박물관 안내나 성경낭송집,앨범발매용 등으로 쓰임새가 많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모터 없이 관절을 움직이는 인간형 로봇 완구가 세 번째 야심작.가격은 기존 제품의 10분의 1로 잡아놨다.

변우영 대표는 "개인 기업이다 보니 대출받기가 가장 힘들었다"며 "올해부터 매출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니까,이런 문제가 해결돼 기쁘다"고 말했다.

변씨 형제는 "매출 목표는 세워 놓은 것이 없지만 남은 부모님 빚을 마저 갚고 월셋방과 총각 신세를 면할 만큼만 (매출이) 올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