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일당 2만원,선수 대부분은 아줌마,실업팀 5개….2004년 한국 여자 핸드볼 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 '아줌마 군단'이 그해 아테네올림픽 결승전에 올랐다.

마지막 상대는 실업팀 1035개에 핸드볼이 국기(國技)인 세계 최강 덴마크.금메달을 따도 돌아갈 팀조차 없는 우리 선수들은 편파 판정 속에서 열아홉번의 동점과 연장,재연장,승부던지기까지 최고의 명승부를 보여줬다.

이들의 실화를 담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문소리.김정은 주연)이 오는 10일 개봉된다.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은 당시 여자 핸드볼의 실상만큼이나 힘들었다.

임순례 감독(47)의 뚝심과 근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감동의 투혼을 발휘한 '아줌마 군단'과 흡사했다.

임 감독은 "작년 6월24일 촬영에 들어갈 때조차 순제작비(36억원)의 절반이 조금 넘는 20억원밖에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걱정이 태산 같았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여자들이 떼거지로 나와 핸드볼하는 영화가 무슨 상업성이 있겠느냐'는 핀잔까지 들었다.

돈이 모자라 아테네 경기 장면 전체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에서는 공항 장면만 카메라에 담았을 뿐이다.

외국인 관객들은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했다.

"동시 녹음이고 전기비도 아껴야 됐기 때문에 한여름에 에어컨도 제대로 틀지 못한 채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촬영했습니다.

그나마 체육관을 오래 빌릴 수도 없어 보름 걸릴 촬영을 일주일 만에 끝내야 했죠."

배우들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3개월간 연습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지만 발목이 삐고,인대가 늘어나는 사고가 속출했다.

모두들 진통제를 맞아가며 강행군을 했다.

"여성적인 김정은씨의 말투나 행동을 운동선수처럼 바꾸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점프를 할 때 자꾸 다리를 뒤로 접어서 '발랄 점프'를 한다고 놀림을 당했지만 결국 극복하더군요.

문소리씨 역시 드라마 '태왕사신기' 촬영을 병행하면서 후배들까지 챙기는 '맏언니' 역할을 했어요.

그 근성에 정말 놀랐습니다."

그동안 '세 친구'(1996),'와이키키 브라더즈'(2001)에서 마이너들의 삶을 따스하게 담아냈던 임 감독은 이번 작품에 코믹 요소를 가미했다.

"상업적으로 변했냐구요? 이 영화도 주변부 인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같은 연장선에 있습니다.

주제와 정서는 비슷하지만 화법이 달라졌을 뿐이죠.이전에 너무 진지했다면 이젠 부드럽게 웃으면서 할 말은 다하는 거죠."

그는 상업적 변신이라는 평을 오히려 반겼다.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순제작비를 놓고 보면 '세 친구'가 4억3000만원,'와이키키 브라더즈'가 10억원 정도였지만 이번 경우는 36억원이나 돼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전작들은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비해 이번 영화는 돈도 많이 들어가고 너무 고생하며 만든 것이어서 제작비는 꼭 건지고 싶어요."

그는 이번 영화에서 '당신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를 묻는다.

그러면서 아무리 힘들고 절망스러워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삶에 대한 용기를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