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 어느 정권에서나 모든 길은 '선진화'로 통했다.

산업화의 불을 지핀 박정희시대 이후 지금까지 '선진조국 창조'는 우리들의 소명(召命)이자 최고의 가치였다.

참여정부의 그 많은 개혁정책들도 한결같이 추구했던 것은 선진화였다.

하다못해 가장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기자실 폐쇄도 '취재지원 선진화'란 이름으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선진국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기실 선진화는 그 뜻마저 분명하지 않은 말장난,무의미한 수사(修辭)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또다시 선진화를 주창하고 나왔다.

당선 후 일성이 "건국과 산업화,민주화를 넘어선 선진화"였고,새해 신년사 또한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선진화'를 왜 첫 화두(話頭)로 던졌을까.

선진화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새삼 갖게되는 궁금증이다.

물론 부자나라가 되는 것이 선진화는 아니다.

막대한 석유자원으로 국민소득 몇만달러를 달성하고 있는 중동 부국(富國)들을 선진국으로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선진화의 첫번째 필요조건이 부(富)임에는 틀림없다.

잘 살지 못하는 나라,국민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환경을 선진사회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벤저민 프리드먼 하버드대 교수는 기회균등,관용,경제적ㆍ사회적 유동성,공정성과 민주주의를 핵심 요소로 국민이 자유를 누리면서 잠재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른바 '사회의 도덕적 성격(moral character of a society)'을 선진화로 규정했다.

'풍요로운 도덕적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선진화 전략에 천착해온 박세일 서울대 교수도 선진화를 '부민덕국(富民德國)'이라고 설명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 되고 고용이 보장되는 경제,정의가 지켜지는 실체적ㆍ내용적 민주,일하는 복지 생산적 복지가 이뤄지는 시민사회다.

그의 이념적 편향에도 불구하고,우리나라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5악(惡)'으로 적시한 것은 특히 피부에 와닿는다.

첫째,우리 역사를 외세와 민중 간 갈등과 투쟁의 기록으로 이해하는 수정주의 역사관,둘째 평등을 절대적 가치로 보아 사회ㆍ경제적 결과까지 균등해야 된다는 결과평등주의,셋째 민족주의 계급주의 지역주의의 형태를 띠는 집단주의,넷째 반(反)법치,다섯째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선진화란 이름으로 허상(虛像)을 좇아왔고,한결같이 선진화에 매진했음에도 왜 선진화를 이뤄내지 못했는지,선진화가 그토록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는 이유를 알 만하다.

대통령 당선인의 '선진화 선언' 이후 벌써 사회 각계도 선진화로 들썩이고 있다.

당선인은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겨우 그 단초(端初)를 던졌을 뿐인데도 질세라 선진화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곳이 없다.

선진화는 정말 어려운 길이다.

중구난방 선진화를 얘기하기 앞서 우리 사회 반(反)선진화의 그늘을 걷어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경제의 선진화와 삶의 질 선진화의 구체적인 모습을 어떻게 그려낼지부터 더욱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다시 선진화가 한낱 레토릭에 그치지 않으려면.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