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3.0 이젠 창조적 전환] (2부) ① 진화하는 R&D…이젠 C&D로 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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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사업방식의 전환 ①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자,이것부터 보세요."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위치한 P&G 본사.해외 비즈니스 담당 해리 콜만 이사는 'P&G의 연구개발(R&D)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연구실보다 인터넷 홈페이지부터 보라"며 PC 앞으로 소매를 이끌었다.
"P&G를 R&D의 강자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원하는 것(Needs)'과 '가진 것(Assets)'이라는 항목이 보이지요?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이 사이트를 통해 P&G의 R&D팀에 수시로 아이디어를 제안해 옵니다."
콜만 이사가 'Needs' 항목을 클릭하자 P&G가 최근 신상품을 개발하면서 아이디어나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20가지 분야의 종류와 성격,구체적인 과제 목록이 일목요연하게 떴다.
"이 목록을 보고 관련 특허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연락해 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2000건이 넘는 제안서가 접수됐고 이 가운데 상당수 제안이 실제 P&G의 R&D에 채택됐지요."
P&G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재 생산회사다.
거느리고 있는 브랜드만 해도 300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한 해 10억달러(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만 질레트 듀라셀 프링글스 팬틴 브라운 등 22개에 이른다.
제조 영역은 화학 제품에서 주방용품 애완동물용품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개별 제품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 회사의 래플리 회장은 2000년 취임 당시 "무작정 R&D 비용을 늘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앞으로 P&G 혁신의 50% 이상을 회사 밖에서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R&D(Research and Developmentㆍ연구개발)가 아닌 이른바 'C&D(Connect and Developㆍ연결개발)' 전략의 시작이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외부 R&D 역량을 활용하는 것이다.
내부 연구진들이 성공하기를 기다려 신제품을 시판하기보다는 외부의 자원을 빨리 연결해 신속하게 상품을 만들어 내는 전략이다.
보톡스가 유행하던 2003년 P&G는 프랑스의 소규모 벤처기업 세데르마사가 피부 재생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 이 회사와 함께 올레이 브랜드로 주름 개선 화장품을 시판했다.
연구개발에 걸린 기간은 18개월.기존 개발 기간의 절반에 불과했다.
감자 칩 프링글스에 글씨를 새긴 '프링글스 프린츠'도 네트워크로 만들어 낸 제품이다.
얇고 끈적이는 감자 칩 반죽에 글씨를 새기는 기술이 필요했던 P&G는 이 같은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
링크를 타고 대서양 건너 이탈리아의 한 제빵회사에서 답이 왔다.
2004년 시판한 이 제품은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술 제휴에 폐쇄적인 입장을 갖고 있던 상황에서 이 같은 전략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자신의 역량이나 관심 분야,미래 사업 구상 등을 경쟁자에게 고스란히 내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P&G는 기술ㆍ전략 유출의 위험성을 감수하더라도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길을 택했다.
신제품 시판 속도(time-to-market)를 더 빠르게 하면 경쟁자가 따라올 겨를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P&G는 경쟁사인 클라락스와 손잡고 주방용 랩 '글래드(GLAD)'를 만들어 낼 정도로 적극적인 오픈 정책을 구사했다.
콜만 이사는 "초기에는 내부 연구원들이 '왜 남의 도움을 받느냐' '외부의 R&D 역량에 의존하면 우리의 자리가 위협받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또 파트너사에 파견 근무를 나가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생활 패턴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연구원들도 많았다.
"하지만 적절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고 연구직에 대한 구조조정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려 이들을 협조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 같은 전략을 통해 P&G는 150만명 규모의 R&D 인력을 확보하는 효과를 거뒀다.
내부 R&D 인력 9000명에 비하면 무려 167배다.
자연스레 P&G 내부 연구 인력들은 외부로 결코 유출돼서는 안 되는 몇 가지 핵심 기술 개발에만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됐다.
P&G의 이 같은 혁신 성과는 지난 수년간의 재무제표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2001년 392억달러였던 매출은 2006년 682억달러로 73%나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R&D 비용은 18억달러에서 21억달러로 17% 증가에 그쳤다.
매출액 대비 R&D 비용의 비중은 4.5%에서 3.0%로 떨어졌다.
P&G와 같이 R&D 역량의 상당 부분을 외부에 의존하는 전략은 특히 상품 수명이 짧고 경쟁자가 많은 소비재 산업 등에 적합하다.
신제품을 빨리 시판해서 선점 효과를 누리고 매출과 이익을 늘리는 것이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하는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말라하는 정보기술(IT) 산업에서도 이 같은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
이 회사 프라모드 레디 이사는 "비용 절감 효과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만으로는 할 수 없는' 혁신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P&G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C&D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아이디어나 기술을 공유하는 파트너와 동등한 협력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라며 "P&G가 대기업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이익만 챙기려 했다면 제2,제3의 파트너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시내티(미국)=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자,이것부터 보세요."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위치한 P&G 본사.해외 비즈니스 담당 해리 콜만 이사는 'P&G의 연구개발(R&D)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연구실보다 인터넷 홈페이지부터 보라"며 PC 앞으로 소매를 이끌었다.
"P&G를 R&D의 강자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원하는 것(Needs)'과 '가진 것(Assets)'이라는 항목이 보이지요?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이 사이트를 통해 P&G의 R&D팀에 수시로 아이디어를 제안해 옵니다."
콜만 이사가 'Needs' 항목을 클릭하자 P&G가 최근 신상품을 개발하면서 아이디어나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20가지 분야의 종류와 성격,구체적인 과제 목록이 일목요연하게 떴다.
"이 목록을 보고 관련 특허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연락해 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2000건이 넘는 제안서가 접수됐고 이 가운데 상당수 제안이 실제 P&G의 R&D에 채택됐지요."
P&G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재 생산회사다.
거느리고 있는 브랜드만 해도 300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한 해 10억달러(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만 질레트 듀라셀 프링글스 팬틴 브라운 등 22개에 이른다.
제조 영역은 화학 제품에서 주방용품 애완동물용품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개별 제품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 회사의 래플리 회장은 2000년 취임 당시 "무작정 R&D 비용을 늘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앞으로 P&G 혁신의 50% 이상을 회사 밖에서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R&D(Research and Developmentㆍ연구개발)가 아닌 이른바 'C&D(Connect and Developㆍ연결개발)' 전략의 시작이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외부 R&D 역량을 활용하는 것이다.
내부 연구진들이 성공하기를 기다려 신제품을 시판하기보다는 외부의 자원을 빨리 연결해 신속하게 상품을 만들어 내는 전략이다.
보톡스가 유행하던 2003년 P&G는 프랑스의 소규모 벤처기업 세데르마사가 피부 재생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 이 회사와 함께 올레이 브랜드로 주름 개선 화장품을 시판했다.
연구개발에 걸린 기간은 18개월.기존 개발 기간의 절반에 불과했다.
감자 칩 프링글스에 글씨를 새긴 '프링글스 프린츠'도 네트워크로 만들어 낸 제품이다.
얇고 끈적이는 감자 칩 반죽에 글씨를 새기는 기술이 필요했던 P&G는 이 같은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
링크를 타고 대서양 건너 이탈리아의 한 제빵회사에서 답이 왔다.
2004년 시판한 이 제품은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술 제휴에 폐쇄적인 입장을 갖고 있던 상황에서 이 같은 전략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자신의 역량이나 관심 분야,미래 사업 구상 등을 경쟁자에게 고스란히 내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P&G는 기술ㆍ전략 유출의 위험성을 감수하더라도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길을 택했다.
신제품 시판 속도(time-to-market)를 더 빠르게 하면 경쟁자가 따라올 겨를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P&G는 경쟁사인 클라락스와 손잡고 주방용 랩 '글래드(GLAD)'를 만들어 낼 정도로 적극적인 오픈 정책을 구사했다.
콜만 이사는 "초기에는 내부 연구원들이 '왜 남의 도움을 받느냐' '외부의 R&D 역량에 의존하면 우리의 자리가 위협받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또 파트너사에 파견 근무를 나가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생활 패턴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연구원들도 많았다.
"하지만 적절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고 연구직에 대한 구조조정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려 이들을 협조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 같은 전략을 통해 P&G는 150만명 규모의 R&D 인력을 확보하는 효과를 거뒀다.
내부 R&D 인력 9000명에 비하면 무려 167배다.
자연스레 P&G 내부 연구 인력들은 외부로 결코 유출돼서는 안 되는 몇 가지 핵심 기술 개발에만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됐다.
P&G의 이 같은 혁신 성과는 지난 수년간의 재무제표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2001년 392억달러였던 매출은 2006년 682억달러로 73%나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R&D 비용은 18억달러에서 21억달러로 17% 증가에 그쳤다.
매출액 대비 R&D 비용의 비중은 4.5%에서 3.0%로 떨어졌다.
P&G와 같이 R&D 역량의 상당 부분을 외부에 의존하는 전략은 특히 상품 수명이 짧고 경쟁자가 많은 소비재 산업 등에 적합하다.
신제품을 빨리 시판해서 선점 효과를 누리고 매출과 이익을 늘리는 것이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하는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말라하는 정보기술(IT) 산업에서도 이 같은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
이 회사 프라모드 레디 이사는 "비용 절감 효과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만으로는 할 수 없는' 혁신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P&G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C&D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아이디어나 기술을 공유하는 파트너와 동등한 협력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라며 "P&G가 대기업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이익만 챙기려 했다면 제2,제3의 파트너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시내티(미국)=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