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하순 "미국의 경기침체를 방지하기 위해선 일시적인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조만간 경기부양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부장관을 지냈고,2006년까지 하버드대총장을 역임한 서머스 교수의 혜안과 영향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서머스 교수는 지난 3일 한국경제신문사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새해 세계 경제도 미국 경제둔화 및 신용위험,고유가 등으로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이명박 정부도 이를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인터뷰 = 하영춘 뉴욕 특파원 >

-연초부터 뉴욕 증시의 출발이 좋지 않습니다.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해 미 경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코노미스트들은 경기침체 가능성을 40% 정도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가능성은 더 높아 50% 정도는 돼 보입니다.

자칫하면 1970년대 말의 스태그플레이션과 1980년 초 경기침체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가 도래할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가벼운 침체(mild recession)'만 오더라도 4인 가족의 연평균 수입은 5000달러가량 줄어 들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적자는 증가하고 국가 부채는 수천억달러 늘어날 것입니다.

설비, 연구개발, 교육투자비가 줄고 수십만가구의 압류주택은 금융시스템을 더욱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 경제도 영향을 받을 것이고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위상도 흔들릴 겁니다."

-미 행정부에서는 여전히 미국 경제가 튼튼하다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좋지 않게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작년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파문이 터졌을 때만 해도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까지는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집값이 예상보다 훨씬 더 크게 떨어지면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민간소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금융회사들의 손실이 커지면서 대출 등 경제활동을 지원할 금융산업 기능도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유가, 음식료값 상승,달러화 약세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등이 겹쳐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제한요소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말 미 행정부가 감세조치 등 500억~700억달러의 재정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군요.

"침체를 예방하기 위해선 국내총생산(GDP)의 0.5~1.0%를 재정에서 한꺼번에 투입해야 한다고 보는 거지요.

이 중 상당부분은 세금을 내는 모든 사람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비를 부추길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모기지를 연체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만큼 세금을 감해주는 방법과 실업수당을 늘려주는 방안 등을 동원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통화정책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발빠른 대응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작년 8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1.0%포인트 기준금리를 떨어뜨렸습니다.

문제는 시장에서 1.0%포인트 금리 인하만큼의 효과가 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은행 간 거래금리인 리보(런던은행간 금리)의 경우 0.4%포인트 하락 효과밖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리보가 떨어지지 않으니 신용경색이 여전하고 금리인하 효과가 제대로 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장금리가 원하는 수준 만큼 떨어지도록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합니다.

소비자의 이자부담을 줄이고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서라도 한꺼번에 금리를 대폭 내리는 조치가 필요합니다.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정책을 구사할 때 입니다."

-하지만 FRB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FRB가 인플레이션에 대해 가지는 공포심리는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져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경기확장세가 멈춘 것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명분으로 내세운 FRB의 통화정책의 영향도 상당합니다.

굳이 과거를 따지지 않더라도 지금은 인플레이션보다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를 더 걱정해야 할 시기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점진적으로 제어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경제가 좋지 않으면 아무래도 세계 경제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새해 세계 경제는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전체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미국 경제가 둔화되면 유럽이나 일본은 물론 신흥시장 경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용경색 등 금융분야 문제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상태입니다.

여기에 고유가와 달러화 약세도 부담입니다.

중동지역의 불안정성과 미국발 경기둔화에서 비롯된 성장에 대해 경제주체들의 자신감이 결여돼 있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특히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보임에 따라 미국 경제가 '최후의 보루(last resort)'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부담스럽니다."

-작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 경제는 상대적으로 고성장을 구가했습니다.

올 신흥시장 경제는 어떨 것으로 보는지요.


"올해도 상당한 성장을 할 것으로 봅니다.

다만 미국 경제가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영향의 정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중국 등 상당수 신흥시장 국가들은 내수시장보다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미국의 소비가 둔화되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2006년부터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수출엔 도움이 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상당한데요.


"달러화 약세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합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자산가치 하락 등이 초래됩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죠.자국 통화가 달러화에 연동된 나라도 걱정이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자국통화가 강세를 보이다 보니 수출이 문제가 될 것이고 또 거시경제에 대한 통제력도 약화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원화도 달러화 약세로 강세를 보여 수출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새해 한국 경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잘 알려졌다시피 한국 경제는 항상 탄력있고 생동감이 있습니다.

특히 10년 전 외환위기를 겪은 뒤 이를 잘 극복해 왔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금융이나 노동 등 각 분야에서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혁적 노력에다 경제주체들의 하고자 하는 신념이 충만한 상태인 만큼 어려울 건 없어 보입니다.

다만 세계 경제가 둔화될 경우 한국 경제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이를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다음 달이면 한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됩니다.

과제를 꼽으면 어떤 게 있겠습니까.


"한국이나 미국이나 조만간 새 정부가 출범하는데요.

과제는 비슷하지 않을까요.

장기적으론 건전한 정책을 견지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단기적으론 경제 에너지를 다시 넘쳐나게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마침 한국에서 친기업적인 정부가 들어선다고 하니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도 기대가 클 것입니다."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