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물가가 관리 범위를 다소 벗어나더라도 정책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가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온 한은의 기존 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는 국제유가 상승 등 공급 측면의 물가상승 요인을 통화긴축 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를 인정한 부분이 있지만,일각에서는 경기 하락세가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월 출범하는 차기 정부의 경제살리기 정책에 호응하겠다는 측면이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일시적 물가급등은 허용?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6일 발표한 '2008년 통화신용정책 운용방향'에서 "물가가 물가안정 목표범위(3±0.5%)를 벗어나는 경우 예상 이탈기간,정책 파급 시차,금융·경제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대응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침은 물가불안에 선제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기존 정책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단기적으로 물가가 오른다고 해서 섣불리 금리를 올리기보다는 경기와 금융시장 상황을 봐가며 신중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은 일시적 물가상승을 용인하겠다는 의사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2007년 통화신용정책 운용방향에는 이 같은 언급이 아예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통화정책 운용방향은 상당히 유연해졌다.

올해 소비자물가가 4%를 넘나들더라도 정책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기하락 우려감 반영된 듯

한은의 통화정책이 유연해진 것은 물가상승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데다 경기상황이 매우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한은은 우선 올해 물가상승 압력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고유가 등 공급 요인과 함께 그간의 경기상승에 따른 수요 압력이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면서 물가 목표범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올 상반기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3.5%로 전망했다.

당분간 물가불안이 지속될 것이란 얘기다.

한은은 그러나 하반기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로 다소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단기적으로 물가가 오른다고 해서 섣불리 금리를 인상하기보다는 국내외 경기와 금융시장 상황을 감안해 금리정책을 펴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상반기 금리인상 없을 듯

한은은 물가가 목표범위를 상향 이탈하더라도 △기간이 길지 않거나 △과거 금리인상 효과가 아직 반영되지 않았거나 △금리인상이 경기와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되는 경우 금리인상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사태가 올해 상반기 중 또 한 차례 터질 것으로 우려되고,국내 시중은행의 자금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상반기 중 금리인상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

한편 한은은 채권시장의 수급 악화로 시장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은행권의 대출도 작년보다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은행의 리스크 관리 강화로 신용도가 낮은 일부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은은 또 올해부터 개편되는 새 통화정책 운영체계와 관련,"시행 초기 콜금리가 크게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일 경우 익일물 RP(환매조건부채권) 등 보완적 공개시장조작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겠다"며 "유동성 조절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RP매각 대상채권 매입을 지속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