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인도 꼬마기업 '미탈' 中美 국영 철강회사 인수후

합병→경영혁신 M&A행진… 용광로 하나 안짓고 세계 1위

"졸려 죽겠습니다."

지난해 12월13일 룩셈부르크 신시가지에 위치한 아르셀로미탈 본사를 방문했을 때다. 그룹 홍보를 총괄하고 있는 장 라자르씨는 "어젯 밤에도 중국 차이나오리엔탈그룹을 17억달러에 인수했다는 보도자료를 세계 각지의 기자들에게 보내야 했다"며 충혈된 눈으로 기자를 맞았다. 일반 회사라면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규모 인수합병(M&A)이 아르셀로미탈에선 수시로 일어난다는 사실에 자신도 놀랄 뿐이라고 말한다.

아르셀로미탈은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연간 1억1800만t의 철강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철강업체다. 생산량만 놓고 보면 세계 2위인 신일본제철보다 3배 많다. 종업원 수도 32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미탈'은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인도 변방의 '꼬마기업'에 불과했다.

아르셀로미탈의 핵심 멤버는 인도 사람들이다. '21세기의 강철왕'으로 불리는 58세의 락시미 미탈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주도하고 있다. 인도 북부 라자스탄 지방의 하층 상인계급 출신인 미탈 사장은 "공장 한 개를 짓는 데 2~3년씩 걸리는 시간이 아깝다"는 말을 자주 한다. 창업 후 직접 용광로를 한 개도 짓지 않고 M&A만으로 세계 최대 철강회사를 일군 철학이다.

가족이 경영하던 철강회사 '미탈스틸'을 물려받은 미탈 사장은 1989년 부채 덩어리이던 트리니다드토바고의 국영 철강회사 캐리비언이스팟을 인수했다. 인수 후 원가절감 등 경영혁신에 나섰다. 하루에 100만달러씩 적자를 내던 회사가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미탈 사장은 자신감이 붙었다. 다른 기업 인수를 시도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버지와 형제들이 반대했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감하게 가족과의 결별을 택했다. 미탈 사장은 "M&A 없이는 절대 글로벌 강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엔 거칠 것이 없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카자흐스탄의 국영 철강회사 카르멧을 인수,1년 만에 9000만달러의 순익을 냈다. 2004년 미국 최대 철강업체인 인터내셔널스틸그룹(ISG)을 매입해 세계 1위로 올라섰고,2006년엔 세계 2위 아르셀로를 합병해 '공룡'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미탈 사장은 "세계 1위이지만 시장점유율이 10%에 불과하다.

덩치를 더 키워야 한다"고 말해 주위를 경악시켰다.

미탈 사장의 스타일은 아들인 아디트야 미탈 최고재무책임자(32.CFO)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아르셀로 합병도 재무통인 그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출신인 아디트야 미탈은 경험이 부족하고 나이가 젊다는 지적에 대해 "2006년 1월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내가 벌써 CFO가 된 데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6개월 뒤엔 내가 왜 CEO가 되지 않느냐고 묻더라"고 답했다. 그는 "2015년까지 철강 생산량을 지금보다 두 배 늘릴 계획"이라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기회를 찾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추가 M&A를 공식화한 셈이다.

M&A를 위한 실탄은 증시에서 조달한다.

아르셀로미탈은 뉴욕 파리 암스테르담 브뤼셀 등 전 세계 9개 증시에 상장돼 있다. 인도 증시에도 조만간 상장할 예정이다.

아르셀로미탈은 지난해 약 1000억달러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덩치만 커진 게 아니다. 경영 혁신을 통해 순익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작년 1~3분기 순익이 2006년 한 해 동안 냈던 순익(82억달러)에 맞먹는 79억달러에 달했다. 미탈 사장은 "합병 시너지가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르셀로미탈의 성공은 개발도상국 기업들이 더 이상 '인수대상'이 아니란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실제로 경제성장과 오일머니로 무장한 개도국 자본은 선진국 기업들을 끊임없이 집어 삼키고 있다. 작년 1~9월 개도국 자본이 인수한 선진국 기업의 자산총액은 1280억달러로,같은 기간 반대의 경우(1300억)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특히 대형 M&A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세계시장에서 왜 M&A가 강조되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상품 경쟁에서 경영자원 경쟁으로 바뀌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도시바는 2006년 영국 웨스팅하우스를 인수,단숨에 원자력 시장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원자력은 원유가격 급등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 중이다. 벨기에의 맥주업체 인터브루는 한국(OB맥주)을 비롯,헝가리 크로아티아 중국 등의 기업을 잇따라 인수해 단번에 신흥시장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원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내실을 기하며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방식으로는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며 "M&A를 통해 일시에 지식과 조직력이 체화된 경영자원을 획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룩셈부르크=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